글 속의 길을 따라 / 러시아

# 여행은, 교과서 밖의 교과서이다.

by 칠십 살 김순남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지하철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에 당황했다. 이게 뭐야? 캐리어를 옆에 내 팽개치고 사진을 찍어댔다. 여기가 지하철이야? 미술관이야? 박물관이야. 가기 전 가이드북으로 모스크바의 지하역, 메트로 궁전이란 표현에 어느 정도일까?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다음 날, 우리는 오로지 모스크바 지하철만 타보기로 했다.


모든 메트로는 깊고,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빠르다. 어떤 역은 2분 정도 내려가는 곳도 있다. 에스컬레이터로 발을 내밀기가 무서워서 멈칫멈칫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역에서는 기어이 젊은 청년의 부축을 받았다. 젊은 청년이 다가와 내 팔을 살며시 잡아주며 미소 지었다. 러시아 청년들은 나이 든 아시아 여인들에게 친절했다.


2006년경인 듯하다. 북유럽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러시아는 공항부터가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물론, 오랜 역사와 색다른 건축물은 나를 놀라게 했고, 특히, 레닌 광장에 섰을 때의 그 감개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 뭔가를 제대로 보긴 했었나 싶을 만큼 이번 여행의 러시아는 나에게는 경이로운, 새로운 체험의 장소였다. 문득 이 넓은 영토를 가진 대국의, 앞으로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했다. 따라서,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안다는 것과 보고 체험하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


모스크바시에 지하 선로 시스템 설치 작업은 193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 첫 단계는 1935년에서 1937년까지 건설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소비에트 연방이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에 완공되었고, 세 번째 단계는 전쟁 내내 계속되어, 이때 지어진 역들은 독일군의 폭격을 피할 수 있는 지하 방공호 역할을 겸하도록 건설되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계는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냉전 시기에 건설되었다. 따라서 이 구간의 역은 핵 공격을 받아도 견뎌낼 수 있도록 건설되었다 삶의 생존을 위해서이다. 모든 역사(驛舍)는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공격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견고하고 웅장하고 깊다. 그 깊은 속에 그들의 삶의 흔적들을, 지나온 역사와 문화의 자취를 곳곳에 아름답게 새겨 놓았다. 지하철의 역사는 곧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다.


지하궁전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모스크바 메트로는 러시아인들의 삶의 자취를 새겨놓은 곳이다. 그렇기에 모든 소재가 그들의 역사 스토리를 바탕으로, 지도자, 노동자, 농민, 상공인, 평범한 시민들이며, 러시아 문학과 예술을 세계에 알린 대 문호들이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해 특정한 장소인,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지 않아도 좋을 만큼, 매일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그들의 문화가 부럽다.


1935년에 개통된 1호선과 1952년에 개통된 5호선 두 개의 역이 지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하는 레닌그라드 역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5호선의 플랫폼은 가장 높은 천장으로 8개의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Ploshchad Revolyutsii역은 1,2,3호선 환승 구역으로 연계되어 있는데, 흡사, 청동 조각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규모의 플랫폼에 넘쳐나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청동상은 영웅들이 아니라 일반 러시아 민중들의 모습으로 러시아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농업, 산업, 사냥, 교육, 스포츠 등 아이 기르는 모습까지 다양한 민중들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와중에, 특별한 조각상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멈추어서 청동상을 한 번씩 만지고 간다. 총을 든 군인 옆에 앉아있는 ‘행운의 개’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속설이 있어서이다. 개의 주둥이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하얗게 색이 바래져 있다.


park pobedy 역은 세계 제2차 대전 전승 기념 60주년을 기념하는 역으로 2003년 5월에 개통된 역이다. 홀의 양쪽에 1812년 조국 전쟁과 1945년 제2차 대전의 승리를 표현한 벽화가 있다. 현재 모스크바에서 가장 깊은 역으로 그 깊이가 84m에 달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깊다.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는 유명한 메트로가 아니어도 발길 닿는 곳마다, 어떤 장식이 없어도 그 자체로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 지하궁전이란 수식어가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지하 문화공간이 이렇게 활성화되어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경이롭고 감동스럽다.


14.jpg


마지막 발길은 도스토예프스키 역. 10호선 외곽에 있는, 역사 끝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통로. 선과 악의 명암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 끝에 강렬한 포스의 인물. 텅 빈 역사 안 끄트머리에서 품어져 나오는 광채. 벽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가 예리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 이 숨 막힘, 친구의 작지만 깊은 놀람의 외마디. 어머나!!


여행은, 교과서 밖의 교과서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에 대한 충격. 이 숨 막히는 순간이 그리워, 다음 해 나는 또 러시아행 비행기를 탔다.


작가의 이전글글 속의 길을 따라 / 러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