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길을 따라 / 러시아

# 모스크바 교통 패스

by 칠십 살 김순남

모스크바 시내로 첫 나들이 하는 날, 오늘의 목적지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이다. 붉은 광장을 중심으로 트르브스카야 거리, 아르바트 거리와 그 주변 일대는 러시아 혁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작품의 닥터 지바고 소설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붉은 광장에는 지하철로 가야 하는데 문제는 모스크바 메트로에 영어 표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2018년에 러시아 월드컵이 개최되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메트로 역명 정도는 영어 표지판이 달려 있을지 모르겠다. 내 눈에는 그림 같기만 한 이상한 문자를 커다란 메모지에 그림 그리듯이 그려 넣고, 혹시라도 정거장을 잘 못 셀까, '호텔 정거장 빼고, 다섯 정거장째'라고 단단히 적어서 가방에 넣었다.


여행 떠나기 전, 가이드북에서 모스크바 패스에 대한 것을 알았다. 패스 3일권 이상이면, 버스, 트램, 그리고 박물관, 미술관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스크바 유람선도 탈 수 있다고 했다. 패스를 구매해서 다니면 편하고 유익하겠다 생각했다. 판매처가 굼 백화점 내부에 있다고 가이드북에 적혀있는데, 교통패스도 포함된 것이니 지하철역에서도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약 구입할 수 있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으니 1회권 티켓도 안 끊어도 된다.


우리 숙소가 있는 빠르잔스카는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역으로 갔다. 티켓 창구 앞에 1일권, 2일권, 3일권이 적혀있다. 숫자만 알 뿐, 적혀있는 내용을 모르니 매표소 아줌마한테 확인했다.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아줌마셨다. “모스크바 패스,” 하며 세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아줌마, 맞다며 친절하게, 버스, 트램 사진에 동그라미를 쳐 준다. 그런데 트램과 버스 그림은 보이는데, 박물관 같은 그림은 안 보인다. 미심쩍어서, 모스크바 패스? 하며 다시 확인했다. 맞단다! 다시 물었다. “뮤지엄?” 그녀는 알아들었다는 듯 웃으며 3일 권 패스를 내어 놓는다. 400 루블. 와 ~ 싸네. 내가 알아 온 것보다 많이 싸다 하니까, 동생이 굼 백화점은 관광지이고 유명 백화점이라 비싸게 받나 보다, 한다. 수월하게 3일권 모스크바 패스를 생각보다 많이 싸게 구입하고, 바로 개시했다. 기분이 사뿐했다.


붉은 광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트베르스카야(Tverskaya) 역에서 내려도 되고 Ploshchad Revolyutsii역에서 내려도 된다. Ploshchad Revolyutsii는 혁명광장이란 뜻인데, 1938년에 개통되었다. 1,2,3호선 환승 구역으로 연계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정신이 없다. 거기다 지하철 플랫폼이 흡사, 청동 조각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청동상은 위인들이 아니라 일반 러시아 민중들의 모습으로 러시아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농업, 산업, 사냥, 교육, 스포츠 등 아이 기르는 모습까지 다양한 민중들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1905년부터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1922년 러시아 공화국으로 재탄생될 때까지 수차례 혁명이 일어났는데, 대부분이 농민, 병사, 노동자 등, 대지주와 귀족들, 부패한 정부에 대한 대항으로 이루어졌기에, 붉은 광장으로 가는 지하철 역에는 그런 모습들이 그림으로 사진으로, 조각으로 묘사되어 있어, 흡사 역사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와중에, 특별한 조각상 앞에서 사람들이 잠시 멈추어서 청동상을 한 번씩 만지고 간다. 총을 든 군인 옆에 앉아있는 ‘개’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속설이 있어서이다. 개의 주둥이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하얗게 색이 바래져 있다. 개가 주인을 살렸나? 그냥 그렇게 짐작만 할 뿐이다. 일단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하니, 나도 개의 주둥이를 한 번 쓸어주었다.


출구로 나가서 보이는 도로로 들어서니 '니꼴스카야 울리짜' 거리다.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 우체국, 수도원이 쭉 늘어서 있다. 이 거리를 걸어서 붉은 광장 쪽으로 갔다. 굼 백화점에도 들어가고, 카잔 성당도 보았다. 그리고 바실리 성당 앞에 섰는데 줄이 한없이 길게 늘어서 있다. 오늘 중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발길을 돌려 빨간 건물의 국립 역사박물관 앞으로 갔다.

일단, 국립 역사박물관부터 관람하기로 했다. 여기도, 제법 줄이 서 있다. 아침에 나오면서 지하철역에서 끊은 3일권 패스가 있다. 순서가 되어 데스크에 가서 패스를 내밀었다. 직원이 패스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왜? 나이 든 여직원은 계속 러시아어로 말한다. 그러면서 옆 데스크에 있는 여직원에게 뭐라고 하면서 비실비실 웃는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사람들 왜 저러지? 은근히 불쾌했다. 내가 유창하게 물었다. “Can You Speak English?” 그래도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러시아어로" &*^%$#@!&" 한다. 아니, 이렇게 많은 외국여행객이 오는데, 영어를 못하는 직원이 데스크에 앉아 있어? 순간 이해 불가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데스크에서 한 참 떨어져서부터 줄이 있는데, 기다리다 못한 우리 뒤에 서 있던 러시아 청년이 다가와 상황을 알아보고 정중히 말해 주었다. 이것은 단순한 교통패스이기 때문에 박물관 입장은 안 된다는 것이다. 아, 그런가? 우리는 너무 당황했다. 이런 망신살이가. 너무 당황해서 그 순간, 돈을 내고 입장해도 되는데, 그 생각조차 못하고 민망해서 “쏘리”만 되뇌면서 얼른 나왔다. 나오면서 청년의 얼굴을 슬쩍 보게 되었는데, 그도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민망해 밖으로 얼른 뛰쳐나온 후 우리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니 박물관 매표소 직원이 얼마나 기가 차고 우스웠을까, 키 작은 동양인 할머니 둘이 들어와서는 교통 카드를 들이밀고 박물관 공짜로 들어가겠다고 했으니. 당황하고 창피스러운 기분이 살짝 지나고 나니, 이제는 우리가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오다가,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웃겨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지하철 매표소 아줌마와 나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엇나갔던 거다. 어쩐지 3일권 패스가 너무 싸다 싶더라.

트레브스카야 거리(Tverskaya Street)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쭉쭉 뻗은 대로를 걸으면서 닥터 지바고 소설을 떠 올렸다. 닥터지바고의 연인 라라가, 아버지를 여의고 우랄에서 힘든 생활을 하다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모스크바로 와서 정착한 곳이 이 트레브스카야 거리(Tverskaya Street)다. 트레브스카야 거리(Tverskaya Street)의 골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라라의 엄마는, 예전 철도회사의 창고 같은 건물에 양장점을 차리고 그곳에서 생활을 한다. 라라의 악몽 같은 생활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라라는 엄마의 후원자이며 정부인 변호사 코마롭스키가, 라라 집안의 생존을 담보로 추근거리며 그녀에게 부적절한 관계를 요구한다. 사춘기의 현실적인 욕망에 잠시 자신을 추스르지 못했던 라라는 그의 추근거림에 넘어간다. 라라는 코마롭스키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점점 그의 야욕의 술수에 더 얽매여지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찾아가 총으로 코마롭스키를 쏜다. 그런 그녀를, 그곳에 있던 닥터 지바고와 그의 약혼자 토냐가 함께 보았다. 지바고와 라라의 인연은 그렇게 강렬한 이미지로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트레브스카야 메트로에서 나오면 작은 광장이 있다. 거기에는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조르주 단테스와의 결투 끝에,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져야 했던 아까운 세기의 문학 천재 푸쉬킨의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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