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길을 따라 / 러시아

# 여행의 시작은 이르쿠츠크에서

by 칠십 살 김순남


시베리아 항공 S7 Airline을 타고 갔다. 공항에 도착 셔틀을 타고 출국장으로 갔다. 가는 사이 넓은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기는 시베리아입니다. 라듯이 온 몸에 시원함으로 부딪친다. 이르쿠츠크는 러시아 본토에서도 많이 떨어진 변방에 위치한 도시다. 우리나라와 시차가 불과 1시간이니, 시차가 7시간 정도 차이 나는 유럽보다 우리 쪽으로 분위기가 더 가깝다고 봐야겠다.


출국장도 작다. 그런데 입국 심사가 갑갑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입국신고서 작성을 여행객이 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 입국 심사 때 여권만 제시하면 직원이 직접 작성해서 준다. 이 점은 아주 마음에 든다. 단, 입국신고서를 분실하면 곤란하다. 돌아올 때까지 잘 보관해야 한다. 호텔에서도, 유심 구입할 때도, 열차표 구입할 때도 입국신고서를 요구한다. 반드시 여권 사이에 끼어넣고 보관해야 불편하지 않다. 유럽 여행 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나라마다 자기들만의 시스템이 있으니, 매번 새롭다. 귀국 후, 여권을 열어보고서야 입국신고서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출국 때, 도로 가지고 갔나 보다. 그것을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이르쿠츠크 숙소에는 한국어를 아주 잘하는 스태프가 있었다. 예약할 때 미리 알아보고 한 곳이다. 러시아란 단어가 주는 대륙적인 분위기, 거기다 문자가 너무 생소하기도 해서 살짝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아가씨는 다년간 한국어 공부를 했으며 한국에도 여러 번 다녀간 경험이 있었다. 가서야 알았다. 이르쿠츠크에는 그 당시 한국 열품이 대단하다는 것을. 특히 젊은 세대들은 웬만하면 한 두 마디 정도는 한국어를 할 만큼, 한국을 사랑하고 있었다.


첫날, 시내를 나갔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돌아오는데 방향감각이 둔해서 버스 정거장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예쁘고 어린 두 아가씨에게 버스 정거장을 물었다. 간단한 말이라 영어로 물었다. 어디 가느냐고 물어서 어눌한 발음의 지명보다 지도가 더 정확하겠다 싶어, 지도를 펼쳐서 숙소가 있는 동네를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둘이서 속닥속닥하고서는 따라오란다. 친절에 고마워하며 그녀들을 따라갔다. 꽤 많이 걷는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버스 정거장 쪽이 맞느냐고 물었다. 맞단다. 그러면서 버스 탈 필요 없이 이 길로 쭉 걸어가면 된다면서 자기네들이 안내를 해 줄 테니 따라오란다. 아, 그런가? 올 때는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왔는데, 지름길로 가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차도를 따라 한참을 가는데, 시내에서 벗어나자 달리는 차도 적어지고 도로도 거칠다. 이미 어둠은 짙어졌고 주위도 한적한 것이 행인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가는 도중에 앞서가던 두 소녀는 머리를 맞대고 소곤 거리기도 하고, 뒤돌아 우리를 슬쩍슬쩍 보며 미소 짓기도 한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말없이 뒤따라 걸었는데 그 조용함도 거슬렸다. 가슴속에서 뭉실뭉실 두려움 같은 것도 올라오고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없애려고 소리 내어 우리끼리 말했다. “제네들 좀 이상하지 않아? 삼십 분은 족히 걸어온 것 같은데.” 친구도 “그러게” 하며 앞서가는 아가씨들에게 큰 소리로 한국어로 물었다. “아직 멀었어요? 얼마나 더 가야 돼요?” 그 소리에 두 아가씨가 깜짝 놀란 듯 뒤돌아 본다. 우리말을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한 아가씨가 영어를 꽤 했다. 불쑥 한 마디 묻는다. “Wher are you from?” 이 말을 왜 이제야 물어보았을까? 아마 소녀들은 키도 작고, 왜소한 늙은 여인들이 중국, 또는 그들이 아는 주변의 다른 국적의 아시아인 일 거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여행 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녀들은 마주 보며 깜짝 놀란다. 우리 보고 한국에서 왔느냐고 되묻는다. 한국 어디에서 왔느냐고도 물었다. 친구는 서울에서 나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그때부터 갑자기 그녀들의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자기들도 한국을 너무 좋아한단다. 꼭 가보고 싶단다.

다리를 건널 때, 이 다리는 언제 놓인 다리라고 자세히 설명해주더니, 이미 문 닫힌 백화점 앞에서는 우리가 원하지 않음에도 자꾸 기념사진을 찍으라며 과잉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그러더니 어느 지점에 와서, 지금 이 길로 쭉 가면 숙소가 나올 거라며, 이제 다 와 가니 자기네들은 그냥 돌아가야겠단다. 우리는 무작정 그녀들을 따라왔기에 지금의 위치가 어디인지, 남은 길이 얼마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난감했지만, 이미 그녀들에 대해서 안 좋은 느낌이 확실히 들었기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들은 이곳은, 여행객들은 조심해야 한다며, 우리 가방에 눈길을 주며 특히, 돈 조심하고 패스포트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러주기까지 하고 갔다.


그때만 해도 구글 지도를 보는 것이 서툴 때여서 종이지도를 보았는데, 그때서야 답답한 마음에 폰을 켰다. 숙소까지 가는 경로를 찾았는데 방향은 맞다. 그때부터도 꽤 걸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밤늦게 숙소에 돌아왔더니 스태프가 반갑게 맞으며 오늘 어땠냐고 묻는다. 돌아오는 길을 설명하며 두 아가씨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며 돈 달라 하지 않더냐고 묻는다. 운이 참 좋다며 다음에는 길을 잃으면 호텔로 전화하란다. 스태프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내일부터는 꼭 조심하라고, 러시아 안전 한 곳 아니라고. 그때서야 두 늙은이, 오늘 우리가 너무 방심했나? 하며 놀랬다.


우리 느낌은 맞았다. 두 꼬마 아가씨들은 우리를 어떻게 해 보려 했었던 거다. 자기들 말만 믿고 아무 생각 없이 뒤 따라오는 두 늙은이에게 작업을 할 요량이었던 거다. 그럴만한 장소를 물색하며 걸었던 거다. 그러다가 우리가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란 것을 뒤늦게 알고서는 작업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을 때의 그녀들의 반응이 어찌나 컸던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을 정도이다. 우리는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던 한류, 멋진 아이돌이 사는, 현대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진 선망의 대상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었던 거다. 그 후에도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한 달 동안 여행하면서, 러시아의 젊은 세대가 한국인을, 아니 한류를 엄청 사랑한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고, 그 사랑의 덕을 많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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