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길을 따라 / 러시아

# 아시아적이지도 않은 것이, 유럽적이지도 않은 것이.

by 칠십 살 김순남

# 아시아적이지도 않은 것이, 유럽적이지도 않은 것이.# 아시아적이지도 않은 것이, 유럽적이지도 않은 것이.

# 아시아적이지도 않은 것이, 유럽적이지도 않은 것이.


우리나라와 가깝게 위치한 이르쿠츠크는 한국 민족 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한 곳이기도 하고, 더러는 이곳에서 독립운동의 거점을 만들기도 했던 곳. 1910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가들이 러시아 당국에 의하여 처형을 당하였던 곳이고, 한인 사회당과 함께 한국 공산주의의 본산의 하나인 공산당 한인 지회가 조직된 곳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지금의 이르쿠츠크는 한류 열풍, K-Pop의 열풍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봄 햇살만큼이나 따뜻하고 친근감 있는 사랑스러운 도시가 되어있었다. 이르쿠츠크 시내 중심가 130 지구를 찾았다. 130 지구를 들어섰을 때, 그 색다른 느낌에 가슴이 팽창하는 듯했다. 아시아적이지도 않은 것이, 그렇다고 유럽적이지도 않은 것이, 뭔가 묘한, 색다른 분위기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건방진 표현이지만, 내가 유럽에 조금은 식상해 있었나? 이런 색다른 분위기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르쿠츠크 130 지구는 18세기 목조 건물과 주택들이 아직도 수십 채 남아있는, 역사지구이면서도 현대식 건물이 함께 어울려 있다. 이르쿠츠크 3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으며 이르쿠츠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육성하기 위해 지은 상업지구란다. 그래서인지 초입에 대형 쇼핑몰이 있어서 주민들의 발길이 번잡한 곳이기도 했지만, 이색적인 골목의 분위기를 훼손시키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130 지구 주위를 돌면서 보존된 오래된 목조건물에서 그들의 옛 거주지를 본다. 내가 느낀 아시아적이지도 아니면서 유럽적이지도 않은, 이 생경스런 분위기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 시작은 러시아 최초의 혁명 운동이라 할 수 있는 데카브리스트 혁명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데카브리스트’는, 20~30대의 젊은 귀족으로 이뤄진, 대부분 1812년의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정예 부대 장교들이었다. 독재자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러시아로 돌아온 그들은 조국 러시아에서도 전근대적 제도 아래서 시달리고 있는 농노와 서민들을 보면서, 왕정을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를 수립하고 농노를 해방하려 난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난은 실패로 돌아가고 데카브리스트 당원은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한다. 특히 바이칼 호수의 물줄기를 이어받는 앙카라(Anggara) 강변에 위치한 이르쿠츠크(Irkutsk)로 유배됐다. 그 험난한 길에 그들의 아내도 함께 했다. 이들은 형기를 마친 후에도 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귀족이며 장교였던 당원들과 그들의 아내들 또한 엘리트였다. 그녀들은 감옥에 갇힌 남편들을 옥바라지하면서, 그들과 함께 갇힌 다른 범죄자들, 잡범들의 권익을 위해 봉사도 했다. 당원들은 20~30년의 유형이 끝나 사면되었지만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지 않고 이 척박한 땅에 정착했다. 그 사이 그들의 아내들은 척박한 시베리아 땅에 새로운 씨앗으로 삯을 틔우고, 극장과 병원을 세우고, 사회적으로 전반적인 문화를 일으켰다. 이르쿠츠크에 아시아적이지도 않은, 유럽적이지도 않은, 묘한 분위기의 연출은 서구 문화에 물들어져 있던 엘리트 장교의 부인들의 손길에 의해서였다. 이곳은 시베리아의 문화적 중심지로 성장하며 궁정 문화와 귀족 문화를 보존하게 됐다. 그래서 이곳을 ‘시베리아의 파리’라고도 한다. 내가 느낀 그 이색적인 느낌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두운 역사를 뒤로 하고 새로운 역사를 위해 가는 길이기도 하다.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남편을 따라가는 여인들, 그들이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자연 스러이 감옥에 갇힌 여러 유형의 잡범들의 뒤를 돌보아주는 모습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떠 올린다. 소설의 주인공 귀족 청년 네흘류도프가 창녀였던 카츄샤를 따라 시베리아 유형지로 오면서, 카츄샤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함께 갇혀있는 정치범, 잡범들의 실상을 알게 되고, 불공평한 사회의 현상에 눈뜨게 된다. 그는 자신의 농노를 내어놓고, 개혁에 앞장선다. 오랜 귀족의 생활에 젖어있던 자신을 낮추며 가여운 자를 위해, 자신의 누적된 욕망을 벗어내는 정화의 과정이 시베리아의 유형 길에서 이루어지고 창녀였던 카츄샤가 맑은 영혼으로 거듭 태어난다.


이르쿠츠크에는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이 있다. 데카브리스트였던 트르베츠키와 볼콘스키의 저택이었던 곳이다. 볼콘스키 공작은 톨스토이의 친척으로, 소설 《전쟁과 평화》의 인물 ‘안드레이 볼콘스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 황당한 식사, 스테이크 탕


130 지구를 거니는데 한 동안 그쳐있던 비가 다시 거세게 쏟아진다. 우산이 있기는 했지만 우산으로 감당할 정도의 비가 아니다. 당황하여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마침 눈 앞에 근사한 레스토랑이 보인다. 넓은 창문을 완전히 오픈시켜 밖의 메인 거리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와 함께 거리를 걷고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순간 어디로 모두 사라진 것일까. 거리가 텅 비었다. 그 빈 바닥을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비가 때리고 있다. 실내에서 느긋하게 바라보는 그 느낌도 결코 나쁘지 않다.


키가 크고 잘생긴 웨이터가 메뉴를 가지고 왔다. 메뉴의 글이 우리 눈에는 글자가 아니라 그림이다. 영문메뉴 부탁했더니 손가락으로 작은 글씨를 가리킨다. 그때서야 그 글이 눈에 들어오는데 영어 표기가 이상하다. 스테이크 종류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다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역시나 영문 표기가 좀 이상하다. 일단 lamb은 보이는데 스테이크란 영문 표기가 조금 다르다. 스테이크? 스테이크? 두 번을 확인했다. 잘생긴 총각 웨이터는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척 치켜들며 굿 쵸이스.! 한다. 그때서야 마음 놓고 ok. 그리고 샐러드 하나. 마실 것을 주문했다.


조금 기다려 샐러드가 나왔다. 갓 만들어 내 온 샐러드는 품위도 있고 맛도 있었다. 우리는 음식이 맛있다며,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들어왔다며 스테이크를 잔뜩 기대했다. 샐러드를 다 먹어갈 즈음에 묵직한 항아리가 나왔다. “어~ 수프도 나오나 봐.!! 괜찮네.” 생각지 못한 음식에 우리의 기쁨은 한층 더 고조되었다. 스푼으로 국물을 떠먹어 보었다. 따끈하고 맛도 괜찮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옷도 젖었고, 8월이라 해도 약간의 한기를 느끼고 있던 터라 따뜻한 수프는 우리에게 행복감을 더 해 주었다. 메인 요리가 나오면 같이 먹으려고 아껴가며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으로 나와야 할 스테이크가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온다.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스푼으로 항아리 속을 저어 보았다. 고기 덩어리가 올라온다. 가라앉아 있는 고기 덩어리를 못 보았던 거다. 이런 거였어? 흐흐. 스푼으로 건져 올린 고깃덩어리는 약간 질기고 커서 한입에 넣고 우물거리기가 힘들다. 우리는 그것을 접시에 올려놓고 스테이크처럼 잘라먹었다.~ 어째 이런 일이.. 두 늙은이 기가 차서 먹으면서도 연신 킥킥거렸다. 허긴 이런 게 여행이지. 소나기는 소나기다. 하늘은 먹구름이 아직 그대로 끼어있지만 비는 멎었다. 조심 스러이 길 위로 나왔다. 그리고 앙카라 강을 찾아 걸었다.




# 앙카라 강변에서 ‘통 크게 20분’


바이칼 호수엔 330개의 강 물줄기가 흘러 들어오지만 바이칼 호수를 빠져나가는 유일한 강은 앙카라 강이라고 한다.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도시 구경도 할 겸, 지도를 들고, 강이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시원한 강변이 바로 눈에 들어오고 혁명전사의 동상도, 알렉산더 3세의 동상도 보인다. 러시아에는 몇 차례의 혁명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적백 내전 당시, 이곳 이르쿠츠크는 중요한 요충지였다고 한다. 혁명 전사의 동상과 알렉산더 3세의 동상은 러시아 혁명과 역사의 반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듯하다. 아버지 알렉산더 2세가 혁명군들의 폭탄테러로 암살당하자, 왕위를 물려받은 알렉산더 3세는 복수를 위해 더욱 철저하게 혁명가들을 사냥하던 인물이었다.


앙카라 강은 유난히 물이 파랗고 깨끗했다. 강변 산책길에는 곳곳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느긋한 시간과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넓은 광장에서다. 여러 여행객들 중에서 어딘가에서 귀에 익은 우리말이 들려온다. 반가운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친구도 그 말을 들었나 보다. “한국사람이야.!!”한다. 반가움에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 접근하려 하는데 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가이드님, 우리 시간 몇 분 줘요?" 남자 가이드의 힘찬 소리가 답을 한다. "통 크게 20분 쏜다." “20분이란다. 빨리빨리 이쪽으로.” 순간, 말문이 닫혔다. 왠지 모를 민망함에 멀찍이 떨어져 갔다.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이곳까지 왔을 텐데. 이런 대우는 심하다는 생각에, 괜히 내가 속상하다. 저런 대접을 받으면서, 왜, 자유여행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이제 여행사의 시스템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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