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길을 따라 / 러시아

# 흥정

by 칠십 살 김순남

모스크바 여행 시 빠트릴 수 없는 곳이 이즈마일롭스키(Izmailovskoye)재래 시장이다. 모스크바에 큰 재래시장이 있다는 정보는 알았지만, 그곳의 위치와 시장의 규모와 형태는 전혀 모르고 갔다. 우리가 묵는 호텔, 룸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특이한 건물이 있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옴직한, 동화 속의 그림 같은 형태의 건물이다. 우리나라 에버랜드 같은, 아이들 데리고 가족 나들이하기 좋은 테마공원 같은 곳인가 보다, 생각하고 닷새나 한 숙소에 머물면서도 가 볼 생각을 안 했다. 숙소에서 시내로 나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을 매일 만났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공휴일도 아닌데 매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온다. 궁금했다. 그렇게 좋은 곳인가? 가 볼만한 곳인가? 하고.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 날, 숙소를 나서 지하철로 가는 길에,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을 또 만났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 그들을 따라갔다. 어떤 분위기인지 입구라도 잠시 보고 가자 싶어서였다. 입구까지 가서야 알았다. 이곳이 우리가 풍문으로만 듣고 갔던 러시아 최대 규모 도, 소매 재래시장이란 것을.


그날은 주말이어서 벼룩시장까지 열렸다. 그 규모는 엄청났다. 넓은 광장, 작은 박물관, 공연장. 음식점 등 규모는 말할 것도 없지만, 수많은 토산품과 기념품 등이 가격이 너무 좋았다. 물건이 너무 많아서 우리로써는 상품을 비교해 보기조차 어려웠다. 사람들도 바글바글하다. 사람 구경에 물건 구경에 정신이 쏙 나갔다. 그러다가 내가 꽂힌 것은 마트료시카가 달려있는 볼펜이었다. 가게 앞에 붙어 서서 얼마냐고 물어도 주인아저씨는 다른 손님들과 대화 중이라 내 말을 듣는 척도 안 하신다. 먼저 서 있던 미국 멋쟁이 아줌마와는 흥정이 끝났는지 아줌마가 볼펜을 포대 자루 같은 데다 가득 넣는다. 하도 답답해서 미국 아줌마에게 얼마에 샀느냐고 물었다. 미국 아줌마가 주인아저씨 대신, 볼펜으로 종이에 적어주는데 <3,5 * 3> 이렇게 적어준다. 볼펜은 한 팩에 세 개씩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낱개 한 개에 3.5 루블인데 3개 계산해 봐라, 그 뜻이다.


미국 아줌마가 계산을 끝내고 가시고 조용해진 후에야 내 차례가 왔다. 볼펜 달라고 했더니, 달랑 한 세트 남아있단다. 미국 아줌마가 포대 자루에 담아 싹쓸이 해 가신 거다. 그거라도 얼마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계산기에 <2.5 *3> 적고 보여주신다. 이것은 무슨 계산법이지? 정작 손님보다 주인장이 더 싼 요금을 말하는 거다. 그거라도 하나 들고 오면서, 동생이 하는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 3.5 루블이 정가인데, 미국 아줌마는 많이 산다고 깎아서 자기는 2.5 루블에 샀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정상 가격 3.5 루블을 알으켜 준거다. 아저씨는 하나 남아서 그냥 2.5 루블에 우리에게 주신 거고. 아. ~~ㅎ" 꿈보다 해몽이겠지만 이해가 가는 말이다. 나는 다시 그와 같은 가격대의 같은 상품을 찾으러 그 넓은 재래시장을 다 뒤졌지만 못 찾았다.


시장 안을 어슬렁 거리며 남의 나라 낯선 분위기, 사람 사는 풍경을 감상했다. 전혀 생각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시장을 구경하다가 털 집 앞에 서게 되었다. 아, 여름에도 러시아라서 모피를 파는구나. 생각하고 보고 있으니, 젊은 점원이 밍크, 밍크, 하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15,000 루블 한다. 그냥, 미소 짓고 돌아섰다. 다음 가게도 모피 가게다. 또 말을 붙인다. 이번에는 13,000 한다. 그때까지만도 살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그냥 눈팅만 하고 통과했다. 세 번째 가게 앞을 지나는데 거기서는 10, 000 루블 한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암말 안 하고 그냥 걸어만 왔는데 그 사이에 15000 루블이 10000 루블이 된 거다.


내 표정이, 내 옅은 미소가 그 가게 점원에게 꽂혔나 보다. 내 앞을 가로막더니 밍크, 밍크 하면서 다짜고짜 얼마면 하겠냐고 한다. 순간, 발걸음이 멈칫했다 모피를 봤다.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내 발걸음이 멈추고 상품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점원은 본격적으로 앞을 가로막고 아예 못 가게 하며 깎아 줄 테니 말해보란다. 예쁜 어린 총각이었는데 영어도 잘했다. 아니, 내가 딱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의 영어를 했다.


러시아에 가면 물건을 많이 깎아야 바가지를 안 쓴다는 것을 여기저기 여행 블로그며 카페에서 알고 갔다. 순간, 장난기도 슬며시 발동을 했고, 그 생각도 나서, 입이 좀 멈칫멈칫했지만, 용기를 내어 딱 반으로 깎아 5000 루블 해 봤다. 그때부터 코가 끼인 거다. 총각이 다시 8000 루블 한다. 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하며 가려고 하니까 한 번만 더 말해 보란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6000 루블 했다. 그랬더니 총각이 다시 7000 루블 한다. 이쯤해서 흥정을 끝내야겠다 싶어서 6000 루블이면 하고 아니면 안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가려하니까, 예쁜 총각이 강력히 앞을 가로막으며 애교스러운 표정으로 ”당신은 저기 보이는 저 호텔에 머물지 않느냐? 그 호텔에서 커피 한잔 마셔도 500 루블은 된다. 그러니, 커피 한잔 마신다고 생각하고 7000 루블 하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네 장사하는 거랑 똑같다. 지금이야 재래시장이라 해도 거의 정찰이지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웬만한 시장에서는 대부분 흥정으로 물건을 거래했다. 그때 상인이 고객을 붙잡으며 하는 말이다. ”1000원짜리 한 장만 더 쓰세요. 커피 한 잔 값만 더 쓰세요. “ 하며..


어린 총각의 그 말에 내 마음은 무장해제되었다. 어린 총각이 열심히 고객 행위를 하는 것도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가게 주인은 저만치서 우리의 흥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여름, 모피가 팔리면 하루에 몇 개나 팔리겠는가? 순간, 내가 너무 인색했나 하는 생각도 조금 들어서 미안하기도 했다. 물건을 잘 샀는지 안 샀는지는 모르겠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물건을 사게 되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풀어지고 따뜻해지며 즐겁기조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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