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피싱이다.

# 피싱에 낚일 뻔한 첫 번째 이야기

by 칠십 살 김순남

자동입출금이 자유로운 통장에는 백 삽 십만 원 정도의 돈이 들어 있었다. 먼 친지가 큰 병이 들었다. 지난달에 적은 금액을 들고 병문안을 했는데, 병이 길어질 것이라 마음이 무거웠었다. 일도 못 나갈 텐데, 병도 병이지만 현실적으로도 힘들 것이다. 응원 차, 한 번 더 응원금을 보내고 싶었다. 그날 밤늦게 인터넷 뱅킹으로 백만 원을 송금했다. 그리니 내 통장에는 겨우 삼십만 원 정도만 들어있었다. 다음 날, 오전이었다.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남편이 '밥 먹자'한다. 책을 덮고 일어나며 폰을 보니 딸애게 문자가 와 있다.


“엄마, 뭐해? 바뻐? 휴대폰고장나서 서비스센터에수리맡기고 지금 컴퓨터로 접속했어.”

“아니, 왜? 벌써 폰 고장이야?”

보낸 시간은 오전 10시 31분이고, 내가 그 문자를 보고 답장을 보낸 것은 11시 24분이었다. 바로 답변이 왔다.

“엄마 부탁이 있는데 지금 시간되? 지금 시간괜찮으면 편의점들려서 구글기프트카드 20만원권 4장 사줘 급하게 필요한데 휴대폰 고장땜에 못사고 있어서”

“아무 편의점이면 돼? 오프라인 편의점을 말하는 거야?”

“24시 편의점 가면 다 잇을거야. 20만원권4장 구매하면되 결제는 현찰로해야해. 카드로는 안돼”

“알았어. 아, 현찰찾아야 하지.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아, 아빠 거래 은행 자동인출기가 우리 아파트 앞에 있으니 아빠한테 말해야겠다. 기다려 봐. 사서 이걸 너한테 어떻게 보내?”

“뒤에 핀코드 찍어서 보내 줘”

“기다려 봐”

“응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말했다. 많이 급한 모양이라고. 처음 남편의 반응은 “요즈음 카드로 안 되는 게 있나?”였다. 비가 꽤 많이 왔다. 부부는 우산을 들고나갔다. 고맙게도 아파트 정문은 멀지 않고 그 앞에 남편이 이용하는 은행 자동인출기가 있고, 또 그 앞에 24시 편의점이 있다. 영감은 돈을 빼러 인출기 부스로 들어가고 나는 먼저 편의점에 갔다.


난, 사실 구글 기프트 카드가 뭔지 모른다. 요즘 하도 기프트 카드란 것이 많으니 그중의 하나라 생각했을 뿐이다. 많이 DC가 되는 카드인 가 보다. 현찰로만 가능하다는 걸 보니..그 정도만 생각했다.


"구글 기프트 카드 팔아요? 그거 현찰로만 살 수 있는 거예요?"

나 딴에는 똑똑한 척하며 한 번 더 확인했다. 아줌마가 반갑게 "녜 ~ 에 그래요 “ 하셨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울 아저씨가.."

하며 밖을 내다보며 영감을 보는데 영감이 인출기 부스 밖에서 나를 보고 팔을 커다랗게 휘두르고 있다. 귀에 폰을 대고 통화를 하면서..ㅠㅠ 돈 뽑기 전에, 딸에게 아버지로서 좀 더 마음을 쓴다는 의미로 전화를 한 것이다.

"카드 넉 장만 보내면 되나?"

"무슨 카드??"


이야기는 이렇게 된 것이다. 정말 일촉즉발이다. 남편이 나의 경솔한 행동에 대한 힐책으로 말했다.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 봐야지!! “

”애가 폰이 고장 나서 센터에 맡겨서 없다고 지금 이 난리를 쳤는데, 당신은 어떻게 전화할 생각을 다했어?

“...................”


영감은 그 생각은 아예 못했던 것이다. 그냥, 혹시라도 넉넉하게 필요하면 더 보내주겠다는 의미로 딸에게 전화를 했을 뿐이다. 남편은 말단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성실하고 알뜰했다. 돈이 지갑에 한 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생활비, 교육비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던 사람, 아이들이 자랄 때는 특히 그랬다. 메이커 가방과 옷을 사줄 때, 친구와 어울려 여행을 갈 때, 용돈 플러스 하기 등등.. 그래서 가정에 꼭 필요한 것 아닌 부수적인 것은 말하지 않고 혼자서 해결했고 지금도 그 습관은 여전하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자립하면서 아빠에게는 한 번도 불편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아들과 딸은 영감에게 언제나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다. 이날은, 나의 '급한가 보다' 라는 추임새에,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딸의 문자라 하니 <정말 그런가 보다> 생각했을 터이다.


이때도 내 통장에 돈이 있었다면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 친지에게 돈 백만 원을 보내지 않았다면, 바로 내 손에서 해결했을 터이란 거다. 그 말은 바로 피싱, 즉시 게임오버였다는 뜻이다. 뒤에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문자를 받은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당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즉시 피싱인지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나는 0.00001%도 의심하지 않았다. 주고받는 말투가 딸과 나의 말투다. 뒤에서야 맞춤법이 좀 심했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것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 우스운 것은, 이런 시간이 거치고 우리가 피싱이란 것을 알아채는 동안에 문자가 또 온 것이다.


"엄마, 오래 걸려?" 정확하게 12시 05분에 문자가 왔다.


그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피싱에 낚일뻔했었다는 것에 가슴이 벌벌 떨렸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 흥분이 가라앉으니 너무 웃기는 거다. 20장짜리 넉장이면 80만 원이다. 생각해 보니 어저께 내 친지와 돈 나눔을 안 했으면 전혀 모르는 이웃과 돈 나눔을 했겠다.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내 통장 잔고에 돈이 없었다는 것이 이런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내 점은 내가 친다>라고 종종 말한다. 이런 사건을 당하고 나면 항상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에는 각자의 시간 속에 어떤 흐름이 있다. 주식의 오름과 내림처럼,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모르는게 주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전문가는 그 흐름을 잘 타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음.. 어쩌면 지금 이 시기가 나에게서는 돈이 나갈 시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말의 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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