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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Apr 11. 2016

<인생학교 선생님,  할머니와의 하루>

어제, 오랜만에 외할머니, 엄마, 그리고 저까지 세 여자가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해가 쨍쨍한 아침부터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함께 했는데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던지요. 그만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꽃구경도 좋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예쁘게만 봐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하루 종일 행복 그 자체인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늘 한결같이 인자하신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셨습니다. 1년 만에 뵈어도, 1개월 만에 뵈어도, 하루 만에 뵈어도 언제나 보자마자 같은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 보자마자 제 손목을 잡으시고는 

“다영아, 많이 먹어야지. 많이 먹어야 살이 찌지. 사람은 통통해야 복이 있고 좋단다.”

라는 말씀부터 하셨습니다. 네. 할머니는 이 이야기를 만나서부터 10분에 한 번씩 하셨습니다. 식사시간에도 저에게 

“더 먹어야지. 많이 먹어야지. 이걸 먹어야지. 저걸 먹어야지.” 

하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휴. 제가 정말 얼마나 잘 먹는데요. 할머니는 그 사실을 잘 모르시니 제가 음식을 안 먹을까 봐 걱정이신가 봅니다. 사진을 구경하면서도, 아기 시절에는 통통해서 보기 좋았다며 지금도 이렇게 살이 쪄야 된다고 제 손목을 잡고 걱정하시는 할머니셨습니다. 처음에는 웃으며 넘겼지만 나중에는 너무 진지한 할머니의 표정 때문에 웃지도 못했답니다. 그렇게 걱정하시던 할머니는 제가 밥을 잘 먹는 모습을 보시고는 아주 흐뭇함 그 자체인 웃음을 지으셨지요.


 그렇게 종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갔을까요? 답은 바로 ‘대화’였습니다.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 생각은, 역시나 어르신들이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진 지혜는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학교’의 ‘지혜’라는 과목의 선생님이신 할머니께, 요즘 들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궁금한 게 있는데요. 살아온 세월을 지금 이렇게 되돌아보면 어떠세요? 80년이 넘는 시간이 빨리 지나간 거 같으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다영아. 지금 이렇게 눈을 감고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면 그 시간이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빨리 지나간 거 같아.” 

할머니의 말씀에 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크게 공감했습니다. 제가 할머니께 말씀드리기는 조금 우습긴 하지만, 저도 요즘 들어 시간이 무서울 정도로 빠른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할머니는 세월은 지나고 보면 모두 다 마치 화살같이 느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0년이라는 시간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정말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2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외할아버지께 시집을 오셨다는 할머니는,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내내 우셨다고 해요. 증조할아버지의 말씀 한마디에 바로 시집을 오셨다는 외할머니. 그래도 그렇게 시집을 오셔서 자녀도 넷이나 낳으시고 할아버지와의 사이는 좋으셨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할머니의 말씀을 쭉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꼭 조건을 따져서 결혼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닌 게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요. 그 생각을 하며 괜히 제가 뿌듯했답니다. 하나하나 모두가 딱 떨어져야 결혼이 ‘성사’되는 요즘과는 너무나 다른 시절이지만, 얼굴 한 번 안 보고 결혼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신 거잖아요. 뿌듯하고 흐뭇한 기분으로 할머니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기쁘게 들었답니다.


 그렇게 하루를 할머니와 함께 보내고, 내내 대화를 나누며 많은 걸 배웠지만요. 그 중에서도,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엄마와 함께 돌아오면서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한 것을 느꼈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저에게 하루 만에 ‘마음의 편안함’을 선물하고 가셨나 봅니다. 네. 마음의 평온이라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어르신의 지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저의 마음을 가라앉혀주셨습니다. 그렇게, 어제는 할머니의 삶의 지혜와 마음의 평온을 배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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