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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Mar 27. 2016

<서울말 쓰는 경상도 여자>

'아가씨 외국인이지? 유학왔어?' 네. 경상도에서 유학왔습니다~ 헷


 경상도 사람은 사투리를 쓰고, 서울 사람은 서울말을 씁니다. 경상도 토박이인 저는 사투리를 써왔습니다. 19살 때까지는 쭉, 사투리를 썼습니다. 서울말은 접할 기회도 거의 없었고요. 자연스럽게, 서울말을 쓰는 분들은 왠지 모르게 멀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


 중고등학생 때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갔었던 기억들을 떠올려봅니다. 갈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한 저에게, 서울 분들의 그 부드러운 말투는 정말 놀라웠거든요. 그리고 정말 좋아보였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다정하고 친절한 말투로 말한다는 사실에 거의 충격까지 받았던거 같아요.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서울말을 쓰는 서울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사투리를 쓰는 제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사투리에다가 저의 말투까지 합쳐지니 정말 민망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네요. 


 사실, 안 그래도 말투 자체로도 지적받은 적이 많은데요. 혀가 짧은 편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저에게 ‘코카콜라’를 해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보는 다른 반의 남자아이에게 바로 앞에서

 “넌 왜 이렇게 말을 귀여운 척을 하는 거야?”

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네요. 충격이었나 봅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요. 그 이후로 최대한 말투를 고치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저의 말투에 사투리까지 더해졌으니 서울분들이 제 말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많이 들었던 말이, 

“유학 왔어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일본 사람이죠?”, 심지어
“한국말 잘하네요.”까지 들어봤네요. 


그럴 때마다 한국사람이라고 말씀드리면, 보통은 아~ 하고 넘어가시는데요. 지금도 기억나는 한 분이 계시네요. 한 아주머니께서 외국인이냐고 하시길래, 경상도 사람이라서 말투가 그런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아가씨. 일본 사람 맞죠? 말투랑 딱 보니까 맞는데. 에이~ 한국사람 아니잖아~에이~아니지? 내 말 맞지?" 계속 이러시는 거예요. 한국사람 맞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마지막까지 "에이~ 딸 같아서 그래. 나한테는 안 속여도 괜찮아. 외국인인 게 뭐 어때서?"라고 하셨었네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저를 못 믿으셨던 건지. 훌쩍

제가 왜 거짓말을 했겠어요... 아주머니...

제가 보기엔 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모두 완전, 누가 봐도 100% 한국인 같은데요. 

말투부터 모든 게 다요.


 그러다가, 제가 서울말을 쓰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제가 연기를 배웠던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때 이렇게 서울말을 배우게 되었네요. 연기를 배우려면 서울말을 써야 한다고 해서, 정말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네요. 처음엔, 사투리는 그대로이고 마지막에만 끝을 올리는 말투였는데 점점 또 고쳐지더라고요. (성격적으로도 너무 안 맞고 그래서 연기를 길게 배우지는 못했는데, 연기를 배워서 말투가 바뀌었네요.) 그리고 그 후로 쭉 서울 쪽에서 살아서 말투가 점점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투리를 쓰면 우선, 너무 시선을 받는 거 같고 어느 지역에서, 왜 혼자 살고 있는지 등 물어보실 때마다 대답하기가 애매했어서요. 그리고 점점 서울말이 더 편해졌네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저에게 보자마자 바로 하는 말이,

 

"야. 네가 서울 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사투리 안 쓰고 서울말 쓰나?
서울 사람인척 하나? 어이가 없네. 아이고~ 웃기고 있네 진짜."  


아, 말투는 좀 강하지만 안 좋은 감정이나 시비조는 전혀 아니고, 원래 경상도 특유의 말투가 이런 데다가 좀 더 강한 친구들이 있거든요. 이런 얘기, 자주 들었네요.


 서울에서 사투리 쓰면, 사투리 쓴다고 한국사람 아닌 거 다 아니까 한국사람인척 안 해도 된다고 하시고.

경상도에서 서울말 쓰면, 서울 간지 얼마 됐다고 벌써 서울 사람인척 한다고 이야기하고. 훌쩍

그래서 저번 명절에, 제가 말할 때마다 사촌오빠가 


"서울 사람 다됐네~서울말 하고~와~난 서울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오글거리던데~대단하다~" 


이러길래, 몇 번을 계속 듣고 있다가 


"아휴~오빠. 나도 서울 가서 사투리 쓰면 사투리 쓴다고, 경상도에서 서울말 쓰면 서울말 쓴다고 보기 싫대. 오빠. 나 말을 안 할 수는 없잖아? 흑흑"


 이러면서 장난으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오빠가 더 이상 말을 안 하더라고요. 헷


 그런데 지금 집에 내려와 있는 동안, 제가 말을 할 때마다 주위분들이 "아가씨~서울 아가씨구나~그래서 말을 이렇게 예쁘게 하는구나~" 하시네요. 서울에 몇 년 살기는 했지만, 서울 아가씨는 전혀 아닌데 말이에요. 그런데 말을 예쁘게 하는구나? 왜 그렇게 들릴까요? 사실, 확실히 서울말이 경상도 사투리보다 부드럽기는 해요. 말투 자체가 억양이 강하지 않고, 아무래도 사투리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떤 말투가 더 좋고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서울말은 서울말만의 부드럽고 자상한 매력이 있고, 사투리는 사투리만의 정감 가고 귀여운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서울말+사투리 둘 다 쓸 수 있는 아가씨로 살아야겠네요. 

서울말에, 사투리에, 2개 국어 참 쉽죠? 



글 쓰고 있는데 문득 오늘 아침의 가족 대화가 떠올라서 웃음이 나옵니다.


거울을 보시던 엄마가 저에게 갑자기 하시는 말씀.

"아~ 진짜, 다영아. 네가 봐도 엄마 요즘 너무 예쁜 거 같지 않나?"

"엄마~ 요즘 진짜 많이 예뻐진 거 같아요."

"무슨 소린데? 내 원래 예뻤거든?"라는 엄마의 말씀에, 쓱 지나가시며 한마디 하시는 아빠.

"아이고~다영아. 놔둬라. 저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한다. 놔둬라. 이쁜 네가(아빠♡) 참아라."

고개를 흔들며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아빠에게 엄마는 말씀하십니다.

"에휴. 무드 없기는. 진짜 다정하고 자상하고 그렇게 좀 해봐라~"

하지만, 엄마가 나가시고 난 후 

"다영아. 네가 봐도 요즘 너희 엄마 많이 예뻐진 거 같지 않나?"라고 속삭이는 아빠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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