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꽃을 피우다.
꽃을 처음 시작하게 된 지 14년이 지나가고 있다.
처음 꽃은 나에게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 해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장미꽃 한 다발을 사 왔었는데, 그게 그다지 감동스럽거나 가슴 벅차게 행복하지는 않았던 걸로 보면 그 시절 나에게 꽃은 행복을 위한 소비의 개념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대학 졸업반 4학년 봄 즈음, 나는 신문에 커다랗게 실린 항공사 신입사원 채용 공고로 보고, 원서를 받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서소문으로 향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다.
원서 교부처는 이미 입구에 들어가기 전부터 지원자들로 가득 차 밀고 밀리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사실 내가 객실 승무원이 될 거란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날 나에게 ' 학생은 이 원서 가져가요' 라며 일반직 원서 대신 객실 승무원 지원 원서를 쥐어준 그 건넴이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일 줄은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인생은 늘 생각지도 못한 우연에서 또 다른 꽃을 피운다.
나는 객실 승무원이 되었고, 객실 훈련원 신입 승무원 전임 강사로 그만둘 때까지 9년의 청춘의 대부분을 항공사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사이 결혼도 했고 두 아이의 엄마도 되었다.
아이가 둘이 되고 보니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더욱 쉽지가 않았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커피라도 마시려고 햇살 좋은 거리로 나오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함께 얘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다른 엄마들은 어쩜 하나같이 그렇게 여유 있어 보이고 좋아 보이 던 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지 못한 건 언제나 더 탐이 나고 좋아 보였다.
신입 승무원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들도, 훈련원 선후배들도 모두 만류했지만, 멋지게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아내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성스럽게 살았다. 목이 아플 때까지 책도 읽어주었고, 체험 놀이도 거르지 않고 해 주었고, 박물관, 전시회도 빼놓지 않으며, 사랑이 들어간 음식도 매일 해주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지만, 히지만 거기엔 생각지 못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어느 밤, 컴퓨터를 마주 하고 앉아 누군가의 블로그 포스트를 읽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꽃 사진들이 달콤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왔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어투로 조근조근 얘기하듯 써 내려간 글은 내가 모르고 살고 있던 또 다른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사진 속의 꽃들은 맑고 투명한 커다란 유리병에 아름드리 풍성하게 꽂혀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꽃의 전부라 해도 이상할 것 없었던 장미나 카네이션이 아닌 꽃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흐드러져 있었다.
그 잔상이 마음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나는 꽃을 시작하기로 했다. 설레었고 뭔지 모르지만 행복했는데, 그것이 내 인생의 또 다른 꽃 피움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