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uren Aug 09. 2019

시들게 마련인데, 왜 꽃을 하시죠?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 꽃은 너무 금방 시들어 버리는데 왜 꽃을 하세요? "


맞는 말이다. 꽃은 환경에 따라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햇살과 바람을 벗 삼아 피어나는 꽃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게 마련인데, 하물며 절화 상태로  꽃시장까지 와서 만나게 되는  꽃들은 오죽할까.  절화로 구입한 꽃은 일반적으로 실온에서는 3-4일 정도 가장 예쁘게 볼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시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꽃이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매일 물을 주거나 갈아주어야 해서 귀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꽃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그들 대부분의  공통적인 생각은 결론적으로 꽃이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되고, 시들 걱정 없이 계속 볼 수 있는 꽃을 곁에 두고 싶다면 생명을 가진 생화가 아니라 조화를 구입하는 것이 맞다. 홈 데코레이션을 위해 한 두 개 정도의 조화 리스나 센터피스를 두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아무래도 생화가 줄 수 있는 활력이나  생명이 전해주는 에너지를 느낄 수는 없게 된다.



"이렇게 예쁜 꽃을 계속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나도 가끔 생각을 해보곤 했다.  시들지 않는 튤립, 시들지 않는 작약, 시들지 않는 라일락, 시들지 않는 라넌큘러스가 있다면 어떨까?  너무 예뻐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산 옷과 구두도 시간이 지나면 굳이 낡지 않아도 유행에 따라 옷장이나 신발장 한구석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싫증이 나서 내놓기도 하는데 언제나 같은 모습과 향기로 피어나 시들 줄 모르는 꽃이 있다면 과연 정말 좋을까?

물론,  예쁜 꽃들이 쉽게 시드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일 테지만, 나는 몇 번이고 생각해봐도 꽃은 시들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저물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것처럼.



" 꽃은 시들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 "


꽃의 아주 단단하고 작은 봉오리를 보면 며칠을 기다려도 좀처럼 그 속에서 꽃이 피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마치 성장이 멈춰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버릴 것도 같다.  그러나, 그렇게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동안 봉오리는 온 힘을 다해 조금씩 조금씩 부풀어 올라 마침내 그들 생애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꽃을 피워내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생각보다 큰  감동을 줄 때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찬란히 피었다가 조금씩 퇴색되며 시들어 가는 모습이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있어서  꽃이 시들어 가며 꽃 잎을 하나 둘 떨굴 때 내 마음은 그렇게 애잔할 수가 없다. 붙잡고 싶어도 곁에 둘 수 없고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누구에게나 오는 처럼 선물 같은 소중한 행복을 받기만 하고 떠나보내야 해서 꽃은 더욱 특별하고 소중하다.


" 삶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표현 "


꽃을 하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꽃을 하는 동안은 많은 생각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예쁜 꽃들과 싱그러운 잎을 만지는 동안은 오롯이 꽃과 내가 있을 뿐이다.  복잡했던 생각도, 얽혀있는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고 화가 났던 마음도 서서히 누그러든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김 대리, 이 과장, 박교수...  직분도 직책도 잊고 오롯이 꽃과 내가 교감을 한다. 하나하나 줄기를 잘라 꽃을 꽂을 때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한 잎 두 잎 꽃잎을 정리하며 꽃을 자세히 볼 때면 마음이 말랑말랑 행복해진다.  꽃이 주는 선물이다. 이런 시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꽃과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꽃을 사서 사무공간이나 집안에 두는 반려 꽃 생활을 이어간다. 꼭 많은 돈을 들여야 할 필요는 없다. 소박한 소국 한 다발이어도 좋고, 은은한 향기가 사랑스러운 스토크 한 다발이어도 좋다. 생활의 한 부분에 꽃을 초대하는 일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고, 삶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표현이다. 



" 행복을 주는 꽃, 전하고 싶다. "


나는 꽃이 주는 이 행복들이 좋아서 꽃을 한다.   꽃이 우리 생활에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꽃을 한다.  오늘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이 꽃들도 머지않아 시들어 버리겠지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행복과 좋은 기억으로 곁에 있어주는 이 사랑스러운 친구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토닥토닥 위로를 받고, 밝고 명랑한 기운을 받아 일상이 조금 더 즐거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할머니가 되어서도 꽃을 할 테다. "


꽃을 계속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욕심은 나의 꿈이 되어가고 있다. 작은 뜰을 갖고 싶다.  소박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정성을 다해  꽃을 심어 가꾸며  햇살과 흙, 구름과 바람을 벗 삼아 천천히 천천히  늙어가고 싶다. " 내 유서 깊은 장미에는 겸손해지지 않는다 "며 마음을 다해 가꾼 장미를 자랑스러워했던 타샤 할머니처럼 나도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나이 듦에 두려워하지 않고 처연하게, 작은 일에 소란스럽지 않게 그렇게 꽃을 하는 꽃 할머니가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세컨드 블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