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점휴업 May 21. 2021

며칠 없는 일이 좋은 날

: 곧 10년차 서비스 기획자 + 프로덕트 매니저의 일기 같은 글

여느 때와 같이 내용과 상관없지만 내가 찍은 사진

    프로덕트 매니저건 서비스 기획자건 회사에서 일하면서 물살을 타고 있다는 기분은 자주 들지 않았다. 내가 파동을 만들기 위해 세차게 물을 휘젓고 있거나 발 디딜 여유 없이 내가 휩쓸려 가고 있다는 기분이 더 자주 든다. 둘 다 불행한데 이유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해야 한다가 가장 크다. 이번 주는 왠지 흐름에 올라탄 기분이 들어서 좋았고 그래서 기록해 두고 싶다. 드문 날을 축하하는 나만의 방법이라고 해두자.


    애매하게 9년차인 나는 좋은 시니어도 좋은 주니어도 아니다. 5년차가 되기 전까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주니어를 적잖이 봤고  명과는 어떤 해결방법을 찾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직업으로서의 역할이나 책임을 가늠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아닌 누군가까지 지탱하며 균형을 잡을 여유가 없었다. 반대로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가지는 기대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나의 상사에 대해 가지는 기대도 무척 컸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목록이 길어질수록 조직에 대한 나의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일만을 두고   나는 매우 판단을 빠르게 하고 판단이 서면 이직하기 일쑤였다. 물론 그것을 통해서도 무척 많이 배웠기 때문에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선택하겠지만 단거리만 뛰는 근육이 발달했던 듯하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회사에서도 의견을 나누고 피드백을 받아서 조직도 관계도 수선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의 지구력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금의 회사에 오기 전에 했다.


     지금 하는 일은 여느 프로젝트와 같이 어려운 상황이다. 왜 아니겠는가? 예전 같았다면 이직하겠다고 나섰을 타이밍이 2번 정도 지난 듯하다. 불타는 지옥이었다면 도망칠 핑계라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뭐랄까 끝나지 않는 백야처럼 지난한 시간이 흘렀다. 취해 있는 백야 같아서 잠이 들어버리거나 빨리 아침이라도 되었으면 싶지만 그마저도 맘처럼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래도 긴 호흡으로 버티는 걸 배우는 거니까. 남는 것 자체가 일단은 배우는 거니까 버텼다. 그리고 지금은 운 좋게 같은 목표를 두고 유사한 온도로 일할 수 있는 동료들과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여러 여건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서 다른 조직장을 설득해서 예산을 얻어내고 그 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우리끼리 고민하는 이 과정이 즐겁다. 제품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고 직업을 대하는 어떤 자세가 겹쳐서일지 다른 팀도 업무도 돕고 응원을 말도 보내준다.


     IT 업계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에 대하여 메타적인 접근을 하는 경우가 잦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정말 많이 듣지만 일을 그렇게 할 수 있는 조직은 적을뿐더러 그런 변화를 일으킬 만큼 조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드물다. 어쩌다 보니 진짜로 해보는 그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이 가장 기쁘다. 되는 살림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이다. 불평하는 것에 지치고 실망하기에도 지겹기 때문이다. 어느 제품이나 조직 모두 별로다. 그리고 모두에게 가장 별로인 조직은 지금 내가 있는 조직이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말고는 어딜 가나 신비롭게도 별로인 것이 된다. 왠지 덧붙여 두는 김창준 씨가 쓴 <파랑새 신드롬>

내용과 상관없지만 내가 찍은 사진 22

    지금이야 글로 투덜대고 있지만 난 조직에서 불만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불만을 이야기한다는 건 나에게 그 해결까지 같이 있겠다는 애정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어디 묶이는 게 싫었다. 무엇이 어려운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저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강박을 내려놔서도 있겠지만 지금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는 내가 직장인으로 가지는 욕망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는 듯하다. 일이 착착 치고 나가지 못해서 내 역할이 희미하게 느껴진다는 걸 조직장에게 이야기할 수 있고 스타트업에서처럼 매출을 목에 걸고 죽어라 일하기에는 무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에서처럼 까라면 까고 시키는 일만 하기는 싫다는 마음을 말할 수도 있다. 요 근래에 주변에나 나에게 오는 오퍼를 보아도 마치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부담을 느꼈다. 다시 스타트업으로 들어가서 중간 관리자 즈음을 하면서 주말에 슬랙 DM 알림을 계속 받을 것인지 성취보다는 일이 되게 하는데에 집중해서 보고에 좀 더 집중하는 대기업 직장인처럼 살지 말이다. 결정을 하지 않는 게 간사하다고 느껴졌고 회피일까 봐 걱정했다. 팀장님이 '그것도 욕망이에요'라는 말 한마디 해줬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마음이 놓였다. 맞네? 조용할 때는 조용한대로 다음 파도를 기다리면서 배우면 되고 파도가 왔을 때면 타면 된다.


    쓰고 보니 뭐 별거 없는데 그냥 그렇다고. 이번 주는 물론 사건사고가 또 있었지만 좋았다.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주고 소속이나 이름을 밝히고 하는 일이 잦아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왔는데 오늘은 그냥 일기다. 진짜 일기인데 왠지 글 말미에 채용공고 붙여야 할 분위기 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일이 많은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