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점휴업 May 30. 2021

재택근무 450일 수박 겉핥기

: 탈수도권 일주일 여름 재택근무 기록

    팬데믹 이후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많다고 하기에는 아침시간 지하철이 무척 붐빈다. IT 업계에서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업무형태를 채택 했는데 나는 내일이면 재택근무를 시작한지 450일째가 된다. 별 생각 없었는데 글 제목으로 쓰려고 찾아 보니 꽤나 오래 되었다. 커리어 초반이 스타트업 위주다 보니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를 다닌 적이 있었다. 주로 결과물에 대한 담당자와 과업 정의가 명확하고 개인이 집중하여 작업할 필요가 있는 개발/디자인 담당자가 재택근무를 많이 했던 기억이다. 마음 한 켠에는 계속 프로덕트 매니저는 재택 근무 할 수가 없다고 믿었던 듯하다. 재택근무가 전사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이상 사무실에서 동료간 오간 대화를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고 몰맥락 상황의 기획은 대부분 큰 수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윗세대 선배들에게 배운 안 좋은 곤조인데 그래도 제품이나 팀 리딩한다는 사람이 몸 편하게 일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한 듯하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열번은 이야기한 듯하지만 고생한다고 해서 잘되지 않고 잘된다고 해서 고생을 한 것도 아니다.

오늘도 내용과 무관한 내가 찍은 사진. 대신 이 건 오늘 디지털로 찍어서 스페샬- 하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화상 회의를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바뀌었다. 한동안은 화상 회의할 때 카메라를 끄고 그러니까 온전히 목소리와 내 컴퓨터 화면 공유로만 회의를 진행했었다. 에둘러 말하고 싶어도 비언어적인 표현을 쓸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서로를 위해 명확하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성격이 똑부러지는 것 이전에 남에게 흠 잡히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는지라 헤헤실실하며 말하기 일쑤였는데 이번에 말투가 완전 고쳐졌달까. 그리고 공교롭게도 회의 참가자 모두가 회의 중에 딴 짓을 하기에 최적의 상황이기 때문에 말하면서 회의록 기록하거나 다른 사람의 발언을 적어 두는 것도 버릇이 단단히 잡혔다. 물론 필요한 사람에게는 공유하면서 피드백 받는다. 내친김에 내 자랑이지만 작년 동료평가 때 언택트 근무환경에서도 요지를 명확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피드백을 받았었는지라 으쓱으쓱이다. 업무 방식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키는 사람은 없지만 혼자 근무 일지를 쓰는 것이다. 뭐랄까 회사로 출근할 때에는 '야 오늘도 고생했다' 느낌이 물리적으로 들 때가 있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행동이 있기 때문일텐데 재택근무 하는 동안에는 컴퓨터 켜면 시작 끄면 끝인지라 경계가 흐려져서 어떤 날에는 하는둥 마는둥 하는 날도 있지만 밤새 일하는 일도 잦다. 오늘 무얼 할 건지나 그게 끝나면 일과를 마치겠다는 계획을 대충 그려 보는 것이다.

    재택근무에 대한 간단한 회고를 해보자면 게중 가장 쓴맛이 도는게 근무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탄력근무제 회사에서 포괄임금제 적용없이 월간 정해진 시간까지는 야근하는 대로 수당을 주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 듣자하니 그래서 야근을 했다고 시간을 걸어 두는 악용 사례도 있다고 한다. 나는 제품을 만드는 조직에서는 근무시간 관리를 하는게 아니라 과업 관리를 해야 된다고 믿는 편이다. 근무시간 관리는 시간당 생산량이 정해져 있을 때 시간을 관리하여 생산량이나 효율을 관리할 때나 쓰는게 아닐까? 해야 하는 일 단위로 관리를 하는 것은 개인마다 하나의 작업을 완수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과 결과물의 퀄리티가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결과물을 보고 피드백 하는 시간을 자주 가질 일이지 누가 새벽까지 일했는지는 1차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새벽까지 일 했는데 결과물이 합의된 수준이 아니거나 결과물이 없다면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주로 재택근무를 채택하지 않는 기업에서 고민하는 지점이 '직원이 놀면 어떡하지?'인 듯하다. 놀 직원은 회사에서건 집에서건 논다. 그리고 당장에 오늘 노는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약속된 일정에 작업물을 합의된 퀄리티로 내느냐 아니냐만이 중요하다. 이렇게까지 가타부타 하는 건 이렇게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 스스로의 업무 스타일에도 그리고 내가 동료를 평가하는 잣대에도 반영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고 나서야 재택근무에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 오늘은 날이 참 좋았다.

    재택근무 하면서 사실 업무적으로도 영향이 있지만 회사 밖의 일상을 꾸리는 방법도 많이 달라졌다. 말하자면 온갖 것이 달라졌다. 요건 차차 정리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일할 예정이다. 이 일주일을 겪으면서 나에게 꽤 이 생활이 맞다면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상상력도 달라질 듯하다. 수도권에서 벗어나서 지금의 내 직업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일주일 동안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해 두려고 한다. 일주일 내내 일기를 쓰는 걸 도전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며칠 없는 일이 좋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