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atmosphere, 시그널 뮤직 혹은 수면등
추운 겨울날의 연속이었다. 추위에 대비하는 습관이 생겼고 계속 춥고 건조했다. 일 년이 지나도록 한자리에 있던 로션 샘플도 그래서 그랬다. 건조함이 가시질 않아 추위에 옷을 더 껴입듯 발라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평범한 보디로션 샘플을 뜯었을 때 마음 한켠 이 무너져내렸다. 이토록 생생할 줄이야. 꽃이나 과일 향이 아닌 그저 청결한 느낌의 향료가 약간 들어간 로션이었다.
그 냄새가 집 냄새, 내 주위의 공기 atmosphere였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가 샤워하고 나와 항상 그 로션을 발랐다. 그것은 샤워하고 난 냄새였고 잠들기 전의 냄새였다. 그 냄새는 밤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뮤직이었고 방에서 가장 늦게 꺼지는 수면등이었다. 그 냄새가 감도는 곳에서 우리는 자주 스르르 깊이 잠들었고 아침을 맞았다. 마지막 날에도 그 냄새는 존재했다. 지금은 쇠락한 왕조의 성터에서 주운 녹슨 주화 한 닢처럼 아무 가치 없이 그저 냄새뿐이다. 하지만 이토록 생생할 줄이야. 로션 향은 향수보다 변덕스러워 리뉴얼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져버린다. 새로운 로션일수록 향은 쉽게 변했다.
나는 그 시절의 추억을 쥐고 싶은 게 아닌데도 그 로션의 냄새가 사라져 버릴 세상에 대해 그 날밤 내 방에서 내 마음이 있는 힘껏 싸우고 또 싸우다 패배하여 울었다. 어쩌면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이 15ml 남은 냄새를 남기지도 못하고 아껴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