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는 중

삶에서 출퇴근만 빼도 이렇게 행복하다니

by 동그라미

오늘의 삐약거리: 있을 , 집 , 부지런할 , 힘쓸


코로나로 인한 뉴스가 한창이던 20년 겨울, 사무실 대부분의 자리들은 주인 없이 비워져 있었다. 전례 없는 바이러스의 습격에 놀란 회사는 각 부서 7할의 인원을 집으로 보냈고 재택근무를 한다 해도 받을 일이 없던 신입만 팀장님과 자리를 지켰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잠잠해질 거라던 예상과 달리 코로나는 고집이 셌다. 바이러스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던 여름을 이겨냈고 우리는 마스크와 함께 그해 겨울을 맞았다. 겨울이 시작되고부터는 햇병아리도 어느 정도 할 일이 생겼다고 여기셨는지 재택근무 스케줄 표에 신입도 이름을 올렸고 사무실 지킴이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재택근무 날, 몸 하나 들어갈 자리도 없는 지하철 출근길 없이 여유롭게 아침을 챙겨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살짝 들떠 있었다. 업무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막상 집에서 노트북 하나 가지고 일을 하려니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았다. 회사에서는 노트북 하나, PC 화면 하나로 화면을 확장시켜 듀얼 모니터를 가지고 일하는데 작은 노트북 화면 하나로 보려니 힘들었다. 특히 결재하기 전, 세금계산서와 전표가 맞는지 확인할 때는 듀얼 모니터가 필수인데 하나로 이리저리 보려니 영 불편했다.


업무 전화, 사무실에 두고 온 서류 등 이 밖에도 삐약거리는 많았지만 그 중 제일 컸던 건 심리적 부담감이었다. 바쁠 때는 화장실 한 번도 못 가고 퇴근을 맞았던 적도 있었으나 그런 날이 있다면 반대로 아무리 할 일을 찾아도 없을 때도 있는 법이다. 회사에 있을 때라면 할 일이 없는 날이 왔을 땐 미뤄뒀던 팀 창고 정리를 하기도 하고 못해뒀던 라벨링을 한다던가, 하다못해 간식을 채워 넣는 일을 하면 되었다.


그런데 집에 있을 때는? 아무도 내가 일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감시하진 않지만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고 노트북 앞을 떠나면 안 될 것 같았다. 스스로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이게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모두가 거치는 성장통이었는지, 뒤늦게 재택을 경험하고 같은 문제로 힘들어 하시는 팀장님을 보며 재택 선배로서 조금 웃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일 년 넘게 재택근무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은 프로 재택러가 되어 가고 있다. 우선 집에는 큰 모니터가 하나 생겼다. 여전히 원격 프로그램에서 듀얼 모니터는 쓸 수 없지만 노트북 화면만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통장아 고마워..혹시 이 글을 보는 원격 프로그램 개발자 분 계시다면 부디 원격 듀얼 창도 고민해주시기를.. 노트북 앞을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은 그 전날 업무 리스트를 세우는 것으로 달랬다. 체크 리스트를 만들고 시간을 쪼개서 그날은 그 일만 끝내면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하니까 어찌저찌 되더라:P


집에서 일하는 나에게 한번 적응을 하고 나니 재택근무의 장점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우선 왕복 3시간에 달하는 출퇴근이 없어졌다! 출근길엔 점점 채워지는 사람들에 납작 만두가 되어가고 퇴근길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을 못 타기 일쑤였기에 인생을 곱씹던 출퇴근 길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제일 나른한 오후인 점심시간에 밥 대신 낮잠을 잘 수 있다는 것도, 퇴근하면 바로 집이라 여가 시간이 늘어난 것도, 점심에 시킬 메뉴로 고민하지 않는 것도 다 좋은데 출퇴근이 없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이동시간만 빼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재택근무는 유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부디 고려해주시기를.


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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