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장으로 달력을 넘긴 지도 꽤 되었다.
일수가 두 자리로 넘어갔으니 보통의 겨울이었다면 내 입에서 춥다는 곡소리가 나왔을 법한데
이번 겨울은 추위가 늦게 올 모양인지 코트만 걸치고도 목이 움츠러드는 일이 없었다.
추위를 많이 타 10월에도 목도리를 꺼내고 목을 움츠리고 다녀, 친구가 박물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모란무늬 자라병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었다.
겨울 아침의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역에서 빠져 나왔다.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속이 답답해질 정도로 뜨끈한 온기를 내뿜던 지하철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자 썰렁한 기분이 들어 옷깃을 여몄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나무들도 모두 옷을 벗어 휑-해보이는 아스팔트 길을 걸으면서 문득, 처음 이 길을 걸었던 날이 생각났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만을 앞 둔 취준생이었고 들어가고 싶던 직무를 뽑는다는 공고를 발견해 열심히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맷돌과는 별개로 제출 전날까지도 자기소개서 마지막 문항이 써지지 않았다. 다가오는 기한에 마음이 급해져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할까를 수십번 생각하다 제출 마감일 새벽 네 시에 겨우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맷돌의 손잡이를 놓을 수는 없었다.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다 생각했더니 한 페이지 중 겨우 한 문단을 완성한 데 불과했던 것이다.
이틀 후 잡힌 1차 면접의 전날에도 급하게 자기소개서에 내가 쓴 말들이니, 면접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이니 따위를 외우다가 또 밤을 지웠다.
잠을 자지 못해 몸은 피곤했지만 몰려오는 긴장에 정신만은 지금까지의 아침 중 가장 또렷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일찍 가서 준비나 하자 싶어서 서둘러 집을 나오다 보니 면접 시간보다 4시간이나 이르게 도착해 근처 카페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친구가 알려준 원더우먼 자세도 하고 갔다.
망했다. 첫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제대로 망했다고.
나름 열심히 준비했던 면접이었으나 처음이라 그런지, 준비가 부족했었는지 목소리는 떨려 나왔고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는 자책감만 들었다.
^-^
딱 저 표정으로 우울하게 집으로 돌아와 마음 정리를 하고 그 주에 친구를 만나던 중 전화가 왔다.
면접을 볼 때 옆에서 계속 안내를 해주시던 인사팀 분이셨다. 1차 면접을 합격했으니 2차 면접 일정에 관해 논의를 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바로 다음 주였다. 부랴부랴 준비를 했고 이번에도 면접 전날 새벽을 온전히 다 써버렸다. 대학교 때 시험 전날 학교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던 게 버릇이 되었는지 이게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마지막 면접에서 생각나는 질문은 이거 하나였다. 이전에 눈물나게 혼나본 경험이 있는가였다. 없다고 대답했다. 살면서 딱히 크게 선을 벗어나 본적이 없었기에 눈물이 날 만큼 혼나본 경험도 없어서였다.
아마 상사에게 업무적으로 혼날 일이 많을텐데 그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려고 하셨던 질문이었던 것 같은데..사실 저 대답도 망했다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내 가치관에 대한 말을 뒤에 덧대었다. 첫 대답이 잘 꿰어졌는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다듬었다.
세 번의 밤을 지새우게 했던 나의 첫 입사 도전기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당시 떨리던 마음으로 걸었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돌아왔던 그 길 위에 있다.
어쩌다 보니 회계팀 막내 사원, 1.5년 차 햇병아리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실 1.5년 차보다 소수점을 아주 조금 더 높여야 하지만 실제 일을 받은 기간이 있으니 나는 1.5살이 맞다..!
사회에서 2살도 못 된 나지만 그동안 회계팀에 있으면서 했던 생각들을 내 나름대로 풀어볼까 한다. 그냥 햇병아리가 삐약거린다고 생각하고 들어주길..
팀도 회사마다, 업종마다 분위기나 업무가 천차만별일 수 있으니 얘는 이렇게 생각했구나, 이렇게 일하는구나 가볍게..
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