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닦으러 가는거 아니고
매스컴에서 '회사 업무와 육아에 지친 당신, 떠나라!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어!'라고 외친다. 엄마, 아빠에게도 여행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일까?
여행에 대한 갈증은 육아를 하며 더 심해집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기본적인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의무'만 연일 존재하는 나날은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습니다. 싱글 친구들의 여행 사진을 보며 한탄을 거듭하다, 아기띠에 아이를 들쳐매고 비행기에 오르고, 아이를 잠시 맡기고 부부끼리 여행에 다녀오기도 했죠.
스스로에게 여행이 비타민 같은 존재인지, 진통제 같은 존재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여행이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비타민이면 아이가 조금 클 때까지 미뤄도 되는데. 이미 여행은 제게, 또 남편에게 일 년에 몇 번씩 마음이 아플 때 꼭 먹어줘야 하는 진통제 만큼이나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싱글일 때와는 달리 내 멋대로 강행할 수 있는 권리가 이미 아님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홀로 여행을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딸린 식구들이 여럿이면 이내 마음을 접게 된다. 상황이 허락해 주지 않는 여행, 다녀와도 될까?
육아를 하는 집에서는 누구와 여행을 갈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옵션이 존재합니다.
아이와 함께,
부부끼리
그리고 혼자.
밀키가 조금씩 뛰어다닐 때쯤, 아이와 첫 해외여행을 나섰습니다. '어린 아기와 하는 여행'은 '아이를 위해!'라고 쓰고 '어른을 위한 고생 여행'이라 읽습니다. 여행이 뭔지 모르는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사실 아이보다 부모의 숨통을 트이기 위함이 맞죠. 마치, 기내에서 산소마스크를 쓰는 순서와도 같이요. 그러나 그마저도 무~척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ㅎㅎㅎ
부부끼리 갔던 여행은, 이제 새로운 가족의 출현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밀키의 부재에 대한 허전함, 잘 있는지에 대한 걱정, 맡긴 부모님들에게 미안한 마음 등 전에 없던 감정들이 여행 내내 머릿속을 따라다녔죠.
최근 남편은 "나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 근데 아이랑 말고. 부부끼리나 혼자 가는 건 어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이와 가고 싶은데."
협상 결렬. 남편은 결국 열흘간 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회사 워크숍으로 푸껫에, 한일 아티스트 프로젝트로 일본에 홀로 다녀온 미안함에 쿨하게 남편을 보내줬지만, 열흘간 아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쿨했던 마음은 육체적 노동에 비례하며 점차 원망으로 변해갔죠.
저는 잠시 동안, 진짜 독박 육아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손이 모자라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순간에도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죠. 밤에 아이를 재우며 "아빠는 언제 집에 와?"라는 아이의 물음에 어물거릴 때면, '남편이 뭔가 사고라도 당해 돌아오지 못하면 나는 이런 상황의 반복이겠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남편의 부재를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론 심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죠.
부부 중 한명이 잠시 없을 때 느끼는 힘듦의 무게는, 아마 상대방이 평소 짊어지고 있던 무게일 것입니다. 함께 인생의 짐을 들고 있는 것인 만큼, 한 쪽에게 잔뜩 부담을 지우고 떠나는 여행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나는 '돈을 더 많이 버니까', 혹은 나는 '육아를 더 많이 하니까'라는 이유도 서로를 납득시킬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열심히 인생의 짐을 지고 있는 상태에서 누가 더 무겁게 들고 있는지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남편의 혼자 여행을 떠나도록 했던 건, 혼자 떠나는 여행의 '치유의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부 각자가 여행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다시 일상을 영위해 나갈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아이와 함께, 혹은 부부와 함께 떠나서는 얻을 수 없는 고독의 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상대방의 부담을 최소할 만큼의 기간을 정하고, 서로의 배려를 얻어내고, 상대방의 짊어질 부담에 대해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가는 것이 부부 사이의 여행에 대한 도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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