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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키베이비 Sep 21. 2017

담양에서 별을 세다 - 숙소 호시담 편

밀키베이비 국내 가족 여행 

밀키가족이 묵은 301호
One Fine Day

서울에서 담양까지,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차로 네 시간 반 정도가 걸립니다. 아이와 함께 간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야 하는 거리이기도 합니다. 바쁜 일상을 쪼개서 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행이 '완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멋진 숙소도 예약했고, 갈 곳도 정리하고, 이제 To do list를 하나씩 지워가면 됩니다. 

몸에 밴 습관 때문일까요. 업무를 할 때처럼 To do list를 처리해 나가는 모습이 여행에서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미션은 바비큐용 고기와 야채를 사는 것이었죠. 아무리 찾아도 생판 처음 가보는 곳이라 그 흔한 마트 하나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지도를 연신 들여다봐도 논과 밭, 그리고 그 사이에 작은 '슈퍼'들 밖에는 보이지 않았죠. 크기는 조금 컸지만 종류는 거의 없는, 고기 직판장에 들러 겨우 고기를 사고 작은 슈퍼에 들러 몇 개 없는 야채를 집어 들었습니다.

"아까 농협을 지나치지 말고 샀어야 하는데...!"
"기름이 없어서 빨리 주유소를 찾아야 했는걸 어떡해...!"

짜증 투성이의 엄마 아빠를 보면서, 네 살 아이는 싸우지 좀 말라며 어른들을 다독입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한숨 돌리는 부녀

얼큰하게 취한 등산객들의 고성방가를 참아가며 소쇄원을 찾아 들어갔지만 때마침 공사 중이었습니다. 이로써 두 번째 미션도 실패. 이름 높은 맛집은 줄을 길게 서 있어서 40분을 넘게 기다려야 했고, 모든 것 하나 아귀가 제대로 맞는 것이 없었습니다. 원래 여행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라지만, 오늘따라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리고 체크인 시간 무렵인 오후 3시를 넘겨 호시담 짐을 풀 수 있었습니다.
주인분은 웰컴 드링크와 아이를 위한 주스로 차분하게 우리를 맞아주셨죠.

작은 산을 따라 나 있는 논밭 사이에, 비현실적으로 지어져 있는 콘크리트 독채 6개. 오렌지 주스를 받아들고 좋아하는 잡지를 하나를 들고 펄럭펄럭 넘기다가, 이 멋진 산과 들, 그리고 가을 하늘을 놓칠 수 없어 눈을 들었습니다. 밀키는 "거봐, 내가 좋다고 했지! (밀키맘: ...언제 그랬지?)" 하며 간식을 우물거립니다. 하루 동안 안 좋았던 기분을 싹 잊고 밀키와 잔디밭을 껑충거리며 뛰놀기를 시전했습니다.


계단만 보면 가위바위보 자동 시작!
레몬이 열린 나무가 신기한가 봅니다



숙소에 도착하고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을 때, 저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특히 아이는 소쇄원이 문을 닫아 엄마 아빠는 실망하고 있을 때, 민들레를 꺾으러 다니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점심시간에 '맛집'에 못 갔는데도 불평 하나 없고요. 오히려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 찾아간 식당에서 붐비는 것 없이 호젓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바비큐 쇼핑을 할 때도 오히려 가짓수가 적어서 고르기 좋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외려 아이를 보며 마음을 많이 다잡은 하루. 



조경 전문가가 꾸민 예쁜 마당. 오른쪽으로 가면 독채에 딸린 노천탕이 있죠.
식탁 밑 아지트♡
북유럽 느낌 물씬 나는 인테리어가 참 센스 넘쳤어요
거실에 놓인 폭신한 캐나다 gus 소파

밀키는 숙소가 정말 마음에 든 듯했습니다. 아이가 이곳 저곳 탐색을 마칠 무렵에는 미리 신청해 둔 바비큐 그릴과 숯을 받았습니다. 타닥타닥, 고기를 구우니 새삼 우리 가족은 '여행에 온 느낌'을 받았습니다. 짜증 내고, 서로에게 날카로웠던 시간에서 벗어나 '고기를 잘 구웠다고','이런 숙소를 골라줘서 고맙다고', '밥을 세 그릇이나 먹어서 기특하다고' 칭찬이 절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밤하늘을 보며 별 하나 고기 한 점




Calm, Meaningful Life



헝가리 구스 이불 돌돌 말고 자는 부녀.
저는 새벽녘에 일어나 노천탕 물을 받고
맛있는 냉수로 아침을 시작.

담양에서의 아침은 저 멀리 명칭을 알 수 없는 새들의 목소리로 열립니다. 맛있는 냉수 한 컵을 들이키고 야외 자쿠지에서 목욕을 합니다. 그리곤 씩씩하게 아침을 먹으러 잔디밭을 가로지르면, 티끌 하나 없는 호시담의 조식 카페가 나와요. 

밀키네가 1등으로 도착


멀리까지 이 치아바타 빵을 공수하러 아침마다 다녀오신다는 호시담 주인분..
밀키에게 준다고 그린 아빠의 마음... (딸 바보)




"엄마 아빠랑 여행 와서 너무 좋아!" 

아부성 발언이 아닌, 마음속에서 생각한 그대로의 무채색, 담백한 말들을 밀키는 쏟아냅니다. 자주 여행 못해서 미안한 감정, 너무 솔직해서 감격스러움, 함께 긍정적일 수 있어서 고마운 감정들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담양의 하늘을 수놓는 별처럼 흩어집니다.


비행기가 자주 다니며 하늘에 그림을 그리네요. 담양의 어느 멋진 하루




↓↓ 담양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1분 영상 ↓↓

https://youtu.be/BftZgZ2TC28




밀키베이비 작가 김우영 
엄마가 되면서 느끼는 사적인 감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밀키베이비’를 연재 중이다. 연재물을 모아 2017년 7월, 육아그림에세이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엄마입니다만’ 을 출간했다. 
 <맘앤앙팡>과의 콜라보 작업, <디아티스트매거진>에 ‘디자이너 엄마의 창의적인 놀이 레시피’를 연재했다. 삼성을 비롯한 기업에 칼럼을 연재하며 다양한 미디어와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최근 <경남국제아트페어>과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 엄마의 시선을 담은 진지한 작품을 출품했고, 일본에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milkybaby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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