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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키베이비 Jul 02. 2020

두려움과 슬럼프

그림작가 김우영의 드로잉 처방전

그림작가의 두려움 삼종 세트


두려움에 연필조차 들 수 없는 시기가 있다. 나의 두려움은 대체로 간단하다.



이따금씩 마주하는 이 3종 두려움은 내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더욱 세차게 몰려온다. 초조함에 못 이겨 관련 책을 더 많이 뒤적이기도 하고,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경험으로 터득한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잠시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밀키베이비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스토리도 만들지 않는다. (생각나면 메모는 해둔다.) 그럼  첫 번째 두려움이 현실화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 동안 미뤄두었던, 내 작업과 아예 연관이 없는 것들을 본다. 책, 영상, 운동, 요리 등...


그러면 갑자기 '그래! 내가 좋아하던 것은 이런 거였는데...!' 하며 취향을 소환하게 된다. 나라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도 떠올린다. 가장 좋은 점은 내 작업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일치하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며 지금 잘 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예술가와 돈


두 번째 두려움은 '돈'이다. 예술가가 대놓고 돈을 밝히는 것은 왠지 터부시 된다. 창작의 순수성이 돈으로 더럽혀지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세간의 시선 때문인지 몰라도, 내게도 돈 얘기는 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돈에 치이며 창작을 하다 보면, 창작이고 나발이고 이번 달 텅장을 메꿀 돈이 필요하다. 대부분은 이 단계에서 나만의 예술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의 꿈을 그려주는 일에 매진한다.


수년 전 퇴사를 하고 작업에만 매진했던 나는 다시 회사와의 동행을 택했다. 조직에서 일하는 장점은 경제적 안정이었지만 이것은 동시에 단점이 되었다. 작가로서 소득을 올리는 것에는 게을렀고 경제적인 독립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호응과 구매는 작가에게 큰 작업 동기 중 하나다. 주변의 작가들은 온라인 숍과 에이전시를 구축하고 열심히 자신에게 리워드를 부여하고 있었다. 예술가는 창작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돈과 친해져야 하고, 작가로서의 독립은 빨리 이뤄질수록 좋다. 작업에서 한 발 떨어져서 보니 나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못 벌고 다른 일로 텅장을 메꾸면서 돈 때문에 창작의 순수성을 잃을까 봐 겁부터 먹었던 것이다. (일단 해보고 겁이나 먹자! > '영업은 필요해' 드로잉 처방전은 다음편에)





새로 산 필기감 좋은 붓펜으로 그린, 이번 화



슬럼프엔 '좋아하는 것'이 약


작업 펜을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슬럼프 기간, 견디다 못해 문구점으로 달려갔다. 슬럼프의 마지막엔 엉뚱하게도 문구를 산다. 나의 처방법 중 하나다. 낯선 재료들을 사서 조금씩 '아무 그림'을 그린다. 나를 옥죄는 규칙 같은 것을 하나하나 없애면서. 그리고 다시 찾은 '좋아하는 것들의 조각'을 끌어모아 본다. 남들이 나에게 부여해 주는 애정이 아니라, 내가 애정을 주고받는 것들을 생각하면 힘이 생긴다.


세 번째 두려움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나를 지탱하는 이 힘으로 어둠의 터널에서 끄적였던 아이디어 메모들을 다시 본다. 그 메모들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내가 몇 년간 쌓아왔던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나의 지루한 일상에 두려움이란 녀석이 지치면, 나는 다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 좋아하는 것과 돈, 그리고 나 자신을 믿는 것은 평생 가져가야 할 과제다. 새로 시작하는 작업에 앞서 이 세 가지는 모두 절실한 것이기도 했다. 초조함과 막막함에 지쳤다면, 처음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괜찮다.


동이 트는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 내가 앞으로 가는 길이 밝을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마음이 움터 올랐다. 낙관의 빛은 언젠가 다시 생겨날 두려움에 묻힐 테지만, 다음번에 다시 꺼질 때까지 조금 더 길게, 밝게 빛났으면 하고 조용히 바라본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 color penci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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