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이 담긴 이야기

나만의 세상을 칠하다

by 은하수별바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색은 하늘색이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그냥 예뻐서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세상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중심 시야는 검은 암점으로 물들었다.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낯설었던 건 ‘색약’이었다.

색약은 색맹과는 다르다. 색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색의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빨간색 종이와 파란색 종이를 내밀면 구분은 가능해요. 하지만 ‘이게 어떤 색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막혀요. 아는 듯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죠.”

나는 후천적으로 색을 잃은 사람이다. 예전에는 크리스마스의 빨강과 초록, 단풍의 붉은빛이 생생했는데, 이제는 그 아름다움을 ‘기억으로만’ 떠올린다. 여전히 계절은 오고 가지만, 그 풍경 속 색은 예전 같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덜 아름다워진 건 아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다시 칠한다. 사과는 빨갛다고, 하늘은 푸르다고. 그렇게 스스로 정의하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새롭게 반짝인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미술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하얀 도화지를 나눠주시며 말했다.

“자, 각자 자기 마음을 색으로 표현해 볼까?”

주변 친구들은 분홍, 초록, 보라… 다채로운 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연필 한 자루로 하늘을 그렸다. 색은 없었지만, 내 안의 하늘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날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미소 지었다.

“멋지다. 감동이 느껴지는 걸?”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비록 나는 색을 완벽히 볼 수 없지만, 대신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의 색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도 그릴 수 있으니까.

이제 나는 다시 하늘색을 좋아한다. 그 색이 어떤 색인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내 마음속 하늘은 언제나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