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체성
나는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가족과 친척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아들을 오래 기다리던 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날, 기쁨에 겨워 춤을 추셨다고 할 정도로 나를 사랑하셨다.
이마가 유난히 넓었던 나는 고향의 이웃들에게 “박사가 태어났네”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우리 엄마는 이런 나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또 소중하게 생각하며 '귀한 아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내 이름엔 ‘밝을 명(明)’ 자가 들어 있다.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라 들었다. 이름처럼 내 세상은 언제나 환했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도, 친구들과 웃던 시간도 모두 눈부시게 빛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빛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눈을 찌를 듯한 밝음 속에서 내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부모님은 늘 말했다.
“핸드폰 너무 많이 하지 마.”
“눈 아껴야지.”
나는 친구들보다 휴대폰도 덜 하는 편이었는데, 왜 내 시력만 이렇게 나빠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억울했다. 이미 흐릿해진 세상 속에서 답답함이 쌓여가던 나에게, 부모님의 잔소리는 나를 더욱 서럽게 할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엄마와 아빠도 마음속으로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 싶은 철든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기엔 아직 너무 어렸다.
햇살이 강한 낮보다 조용한 밤이 좋았다. 낮에는 빛이 너무 강해 눈이 시리고,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망막 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밝은 빛은 늘 부담스러웠다. 밤이 되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고, 세상도 조금 덜 복잡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나를 보고 ‘드라큘라’, ‘올빼미’라 놀렸다. 처음엔 장난으로 웃어넘겼지만, 그 별명은 점점 내 마음을 깊숙이 찔러댔고, 상처로 번져버렸다.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차츰 쌓이더니, 이내 마음의 병(우울증)을 일으키고 말았다.
학교는 견디기 힘든 곳이 되어갔다. 칠판 글씨는 더욱 흐릿해져 갔고, 친구들과 선생님의 시선도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시선들을 피하려고 무심하게 앉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조용히 몸을 낮추고, 사람들 속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
결국 나는 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믿었다. 병원을 다니며 여러 검사를 받았고,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내 눈에, 그리고 내 인생에 새로운 이름이 생겼음을 몸소 알 수 있었다.
‘시각장애’
상담 선생님은 특수학교를 추천했다. 그곳에서는 나처럼 흐릿한 세상 속을 사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두려움이 있었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생겼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스스로에게 건넨 작은 위로가 마음을 조금 놓이게 했다.
이윽고 나는 맹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그곳에서 비로소 ‘나’로서 숨 쉴 수 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마음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흐릿한 세상을 살아오며 느낀 것들을 단어 하나하나에 담아내고 싶었다. 이제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같은 길 위를 걷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
"비록 세상이 흐릿하게 보일지라도 마음속의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 빛이 지금의 나를, 글을 쓰는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