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를 마주한 시각장애인
초록불에 건너고, 빨간불에 멈춘다.
단순한 원칙 같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매일이 목숨을 건 도전이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면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지금 초록불이야? 아니면 빨간불?”
혼잣말을 되뇌다 결국 용기를 내 한 발 내딛지만, 건너고 나서도 불안하다.
“혹시… 빨간불이었나?”
물론, 음향신호기가 설치된 곳도 있다. 차들이 쌩쌩 달릴 때 ‘삐익 삐익’ 하는 그 소리 하나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런 신호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전국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하지만 현실은 ‘눈치 게임’의 연속이다. 사람이 많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남들이 건너면 나도 건너고, 멈추면 같이 멈춘다. 문제는 사람이 없을 때다. 그때는 모든 감각이 긴장한다. 차 소리, 발소리, 신호음이 아닌 주변의 공기마저도 살핀다.
그런데 사람이 있다고 늘 안전한 건 아니다. 한 번은 옆사람을 따라 건넜다가 빨간불에 차가 달려들 뻔했다. 운전자의 욕설이 퍼부어졌고, 나는 억울했지만 잘못한 것은 나였다.
그날 이후로 횡단보도 앞에서 선 채로 주눅 든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순 없다. 장애인의 자립이란 세상을 향해 스스로 걸어 나가는 일이다. 때론 두렵고, 때론 머뭇거리지만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신호등이 없는 길의 장점이 있다. 차 소리와 사람 발소리를 듣고 건널 수 있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는 신호등이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감에 의존하다 사고라도 나면, 책임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음향신호기의 설치 확대가 꼭 이루어지기를.
저시력인에게는 바닥 신호등이 생명줄이다. 멀리 있는 신호등 불빛은 너무 작고, 흐리다. 바닥 신호등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현시킨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는 오늘도 손을 든다. 어릴 적 유치원에서 그렇게 하라고 배웠으니까. 손을 들면 차들은 멈춘다. 그 뒤에 날아오는 욕설은… 그냥 삼킨다.
시각장애인도 안전하게 걷고 싶다. 빨간불과 초록불의 차이를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 차이를 ‘들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언젠가는 내가 먼저 외치고 싶다.
“건너자.”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