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맞추기 힘든 우리들
나는 맹학교에 다닌다. 우리 학교 복도에서는 시선 대신 소리가 자주 오간다. 흰 지팡이가 바닥을 탐색하며 내는 ‘톡, 톡’ 소리의 리듬으로 친구의 걸음걸이를 알아채고, 익숙한 목소리의 주파수로 상대의 위치를 가늠한다. 세상은 눈을 맞추는 것이 예의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의 ‘아이 콘택트’는 필수 과목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시선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전맹이 아닌 저시력 학생이다. 세상이 온통 캄캄한 것은 아니지만, 내 시야의 한가운데에는 지워지지 않는 검은 얼룩이 떠다닌다. 무언가를 똑바로 보려고 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그 얼룩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정면으로 세상을 보지 못한다.
친구와 마주 앉아 이야기할 때 나는 친구의 얼굴을 보기 위해 시선을 살짝 돌려 어깨나 귀 언저리를 본다. 그래야만 시야의 가장자리로 친구의 희미한 표정이라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빛의 변화 정도만 감지하고, 앞자리에 앉은 다른 친구는 시야가 터널처럼 좁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보기 힘들다.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에 담긴 미세한 떨림으로, 잡은 팔에서 전해지는 온기로, 함께하는 시간의 공기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눈이 아닌 감각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학교 밖을 나서는 날은 다른 세계로 떠나는 작은 여행과도 같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께서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딜 보는 거니?" 하고 서운해하실 때, 버스 승차 시 기사님이 "여기 있잖아요. 똑바로 안 봐요?"라며 불쾌한 듯 말을 건네실 때,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당신을 보기 위해 당신의 눈을 피해야만 하는 나의 세상을,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그저 "죄송합니다. 눈이 조금 불편해서요." 하고 얼버무릴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 간절히 하게 된다. 눈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는 세상의 중심을, 사람들의 얼굴을, 그 표정을, 나는 글로써 마주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눈을 맞추지 않아도 진심은 얼마든지 전해질 수 있다. 우리 학교 친구들이 서로의 존재를 의심 없이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아이 콘택트'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단순히 시선을 교환하는 행위를 넘어, 상대의 세계를 향해 나의 세계를 온전히 포개려는 노력. 눈을 맞추는 대신 마음을 맞추는 것.
오늘 나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한가운데를 향해, 그곳에 있을 누군가의 마음을 향해, 나의 문장을 띄워 보낸다. 이것이 글쓰기를 사랑하는 내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이고, 나의 가장 진솔한 아이 콘택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