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by 은하수별바다


어릴 적 동요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여느 때와 같이 안마원 실습을 마치고 기숙사로 향하던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한쪽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요즘 빠져 있는 어느 밴드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이라면 십중팔구 공감하겠지만, 시내버스 탑승은 늘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 안마원 실습을 계기로 버스와 조금은 친해졌다. 말했듯, 이어폰을 낄 여유도 생겼다.


사건은 목적지까지 한 정류장을 남긴 채 시작됐다.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뭘 잘못했나?’


버스 안이라 전화를 받는 게 조심스러웠다. 가능하면 조용히 있고 싶었지만, 평소와 달리 전화 연결이 길어졌다. 한 정류장만 더 가면 되기에 결국 전화를 받았다. TV 프로그램 제의였다.


담임 선생님은 방송사 작가님의 연락처를 알려주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사이 버스는 목적지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하차 태그를 하고 내려, 환승을 위해 바로 옆 정류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5분쯤 기다려 다시 버스를 탔을 때, 아까 전달받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작가님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도 괜히 긴장이 되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지금 버스 안이라 그런데, 이따 연락드려도 될까요?”


작가님은 흔쾌히 편한 시간에 연락 달라고 하셨다.


지하철까지 타고 나니 이제 걸을 일만 남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긴장한 탓에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런데 이번엔 작가님이 운전 중이라 통화가 어렵다고 하셨다. 그 말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학교에 도착하고서야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엔 진짜였다. 촬영 날짜와 여러 안내 사항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셨고, 담당 작가님이 따로 있다며 또 다른 연락처를 전달해 주셨다.


며칠 뒤, 담당 작가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전 인터뷰였다. 원고 작성을 위한 전화 인터뷰였는데, 전화임에도 말이 자주 막혔다. 그래도 정신을 다잡고 끝까지 이어갔다. 작가님은 촬영 날도 오늘처럼 대화하듯 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쉽게 납득되지는 않았다. 떨릴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 당일이 되었다. 촬영의 큰 소재는 역시 '장애'였다. 우리 학교 점역사 선생님께서 차로 태워주셨다. 추운 날씨에 길이 얼어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우리가 지나갈 길은 모두 녹아 있었다.


차 안에서 계속 원고를 들여다봤지만, 내용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추워서 떨리는 건지, 긴장해서 떨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심리학에서 이걸 뭐라고 부르던데, 정확한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방송국에 도착해 어색한 메이크업을 받고, 옷매무새도 정리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여러 대의 카메라와 조명이 나를 향해 있는 듯 느껴졌다. 생각보다 많은 스태프 분들 덕분에 긴장은 더 커졌다. 함께 출연한 선생님도 평소엔 말씀이 많으신 분인데, 그날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의자에 앉아 리허설을 했다. 인사만 연습했을 뿐인데도 내 목소리는 분명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녹화 들어갈게요!”라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휴, 해보자.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 분과 천천히 호흡을 맞췄다. 말이 막힐 때면 자연스럽게 이어 주셨고, 옆에 계신 선생님도 도와주셨다. 말이 길어질 때는 아나운서 분이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다. 인위적인 촬영이라기보다, 정말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조금 긴장이 풀릴 즈음, 시간이 다 되었다는 말이 들렸다. 체감상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는 저시력인이라 무언가를 확인할 때 앞으로 다가가는 습관이 있어, 화면에 잘 담기려 어깨를 펴는 데 계속 신경을 썼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다 같이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메이크업 덕분인지 얼굴이 평소보다 더 화사해 보였다. 30여 분 동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NG 없이 한 번에 끝났다는 사실에 스스로 조금 뿌듯해졌다.


방영 날에는 부모님과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보이콧’이라며 장난을 쳤고, 또 누군가는 말을 참 잘한다며 칭찬해 주었다. 내 절친 철덕(‘교통 평등을 꿈꾸다’의 그 철덕)은 부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방송은 큰 편집 없이 비교적 그대로 나갔다. 부끄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이제는 조금쯤 자신감을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학교에서 보낸 지난 6년. 내 학창 시절의 절반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대한 하나의 보답처럼, 이번 촬영이 다가온 것 같았다. 졸업 선물 같은 경험이었다.


2026년, 더 멋진 내가 되어 성장하고 싶다.


참 고마운 촬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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