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지갑

시력 소비와 저축 사이의 딜레마 이야기

by 은하수별바다

"지금 가리키고 있는 숫자, 보여요?"

"…"


질문이 모순이었다. 숫자는커녕 가리키는 봉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요."




매년 한 번씩 찾아오는 안과 검진 날. 첫 번째 코스인 시력 검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다음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워낙 많아, 한 검사를 끝내면 다음까지 십 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심심했던 나는 병원 의자 팔걸이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내 이름이 빨리 불리기만을 기다렸다.


시야 검사, 망막 촬영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로 향했다. 교수님은 내 안구 사진을 들여다보며 망막 중심부, 황반을 집중하여 살피고 계셨다.


"암점이 조금 커졌네요."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미묘한 차이 아닌가요?"


사실 요 며칠, 눈앞의 검은 점이 조금 커진 것 같아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눈의 피로가 쌓이는 게 느껴졌지만, 수험생에게 공부를 멈출 자유는 없었다.


"최대한 눈을 아끼셔야 해요."


그 말은 언제나 내 기운을 꺾었다. 고3 수험생으로서, ‘눈을 아끼며 공부하라’는 말은 모순이었다. 저시력인으로서, 눈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일 또한 불가능했다.


나는 그 모순을 ‘시력 지갑’이라 부른다.

아끼려 해도, 결국 눈은 쓰이고 마는 것.

붙잡으려 해도, 결국 눈길은 흘러가는 것.


오늘도 나는 시력을 조금씩 소비하며 살아간다.

나의 투자가 헛되지 않기를, 스스로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