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하 Nov 07. 2023

브런치 스위치를 누르다.

당신의 삶에 새로운 무기가 +1 되었습니다.




숨이 턱 막혔다. 



 0.0001um의 오차도 허용이 안 되는 무시무시한 곳. 한 번의 실수로 억 단위 피해가 생기는 곳. 15년 동안 설계 업무를 하던 곳은 그런 곳이었다. 놀이동산의 인형 마냥 "오늘도 반갑습니다" 웃으며 출근하지만 인형탈 속의 표정과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대기업의 안정적인 월급과 복지는 '이런 것쯤이야'를 연신 내뱉을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으니까. 



자본주의의 힘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경제적 독립을 하게 해 준 회사에 감사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잘못된 만남이다. 계획적인 사람이지 계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수학보단 역사가 좋았다. 이과대신 문과를 선택했다. 과학 말고 경제가 좋았다. 그냥 설계일이 맞지 않았다는 말을 지금 하고 싶은 것뿐이다.



출처 pixabay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전 세계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는 육아휴직과 퇴사라는 선물을 남기고 떠났다. 

콩알만 한 용기로 자발적 퇴사를 지하 깊숙이 처박아 놓고 살던 내게 월척을 던져 준 코로나였다. 울타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지만 감사히 받고 일단 'GO'를 외친다. 



어른의 삶은 항상 선택에 따른 결과를 책임져야만 했다. 가끔은 핑계를 대고 떠밀려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릴 때는 그렇게 싫었던 강제의 힘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다.








서서히 작가가 되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돈을 벌어 보겠노라 퇴사 후 방치해 두었던 블로그와 인스타를 다시 시작했다. 1일 1포로 플랫폼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했기에 매일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 사부작 글을 쓰는 피아니스트가 되어 본다. 



마치 작가처럼. 딸아이의 눈에는 이 모습이 작가처럼 보였나 보다. 



어린이날 가족행사에서 아이는 가족 구성원을 소개하는 글에 엄마를 '작가 엄마'라고 당당히 적었고 이 글은 초청가수의 목소리로 행사장에 울려 퍼졌다. 신랑과 아들은 "오구, 작가님 오셨어요~" 라며 비아냥댔지만 상관없었다. '여기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라는 마음으로 작가가 된 그 순간을 즐겼다.





출처 pixabay




"작가입니다만."

작가 스위치를 켰다. 이제 모든 게 쓰고 싶어 진다. 기왕이면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감히 입밖에 내놓지 못했던 가슴속 깊이 모셔둔 꿈을 꺼내 본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브런치 입성으로 절반은 성공한 게 아니냐며 오만도 떨어본다. 한밤 중 찬밥과 남은 김치찌개를 허겁지겁 들이키는 글에 공감하고 위로받을 누군가를 생각하니 써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그것은 '위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가처럼 아장아장 글을 쓰고 있지만 함께 쓰는 그녀들이 있기에 머지않아 런웨이를 휩쓰리라 믿는다. 








운동하셨나요? 

독서하셨나요? 

칭찬하셨나요?



그리고... 글 쓰셨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