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날씨 : 김장하기 딱 좋음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이는 땀방울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다.
발그레한 볼과 빨개진 코, 말할 때마다 나오는 입김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옹기종기 모여 웃음꽃을 피운다. 빨간대야에 있던 200 포기의 절임배추들은 정성스러운 손길로 김칫소와 버무려지며 빨갛게 꽃단장했다. 마치 여기 우리들처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선택받은 엄마당 회원들과 함께 한부모 가족 지원센터에 보낼 김장을 했다.
가평집 앞마당은 10명의 엄마당 회원들과 200 포기 김장을 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어릴 적 시골에 할머니댁이 있는 친구가 어찌나 부러웠던지 자식과 손주들에게는 그 맛을 느끼게 해 주겠노라 낙찰받은 가평땅에 지은 전원주택이다. 신랑 직장과 아이들 학교 문제로 도시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언제나 힐링으로 반겨주는 그곳은 마치 친정 같은 공간이다.
2미터는 족히 되는 홍콩야자나무와 블루베리 나무. 그 사이로 보이는 빨간 고무장갑에 파란 앞치마를 두른 그녀들의 가슴엔 엄마당 로고가 유난히 돋보인다.
"와, 미쳤다. 대표님~ 우리 김치사업 해야 할 거 같은데요?"
"200 포기 거의 다 끝나가요. 김치 케미 장난 아니야~"
"그니까. 홈쇼핑 한번 진출하시죠. 바로 매진각인데."
교복 입은 소녀처럼 깔깔깔 웃으며 좋아하는 얼굴 앞에 푹 고운 수육 접시를 들이댔다.
"다음 주 토요일 오후 1시, 보통책방살롱. 김장 뒤풀이 다 오시는 거죠? 다들 점심 먹지 말고 와요. 김장 봉사활동 해준 것도 고마운데 다음 달 보육원 청소 봉사도 같이 한다고 모두 콜 해줘서 감동받았잖아요. 그래서 깜짝 선물을 준비했지요. 다음 주 뒤풀이에 이은경 선생님 오시기로 했답니다. 편안하게 티타임 하는 시간이니까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하면 될 거예요. "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과 갓 담근 김장김치를 먹고 있던 그녀들의 놀란 토끼눈에 씽긋 엄마 미소를 지어본다. '놀라지 마. 이제 시작이야.' 엄마가 필요한 엄마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고 싶어 시작했던 일이 좀 커졌다. 이제는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려 한다.
5년 전 나의 멘토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을 가로지르자 전화 한 통이 울린다.
'지잉지잉~'
"엄마~ 나 오늘 집에 가."
"내일 아니고 오늘 오는 거야?"
"응. 갑자기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랑 삼겹살 먹고 싶어서 안 되겠어~"
"아들~ 아직 기숙사지? 엄마가 태우러 갈게. 조금만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