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반.
남편의 출근이 이른 날은 나도 덩달아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주방 불을 켜면 아직 식지 않은 어둠이 남아 있는 듯하다. 지글대는 프라이팬 속 계란프라이 소리, 전자레인지 알람음 소리. 그 작은 소음이 내 하루의 첫 리듬이 된다.
남편이 나간 뒤, 집 안은 잠시 멈춘 듯 고요하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 자막이 켜졌다.
‘세탁기 돌리기.’
‘아이들 옷 챙기기.’
‘오늘 해야 할 일 적기.’
하나의 생각이 지나가면 또 다른 생각이 이어진다.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이보다 늘 앞서 달린다.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른다. 잠깐의 정적이 좋아서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금세 자막은 다시 올라왔다.
‘커피 캡슐이 남아있나?’
‘오늘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아침,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은 짧지만 그나마 나를 붙잡아주는 고정점이다. 어플의 알림음이 들릴 때면 ‘아, 그래도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있구나’ 싶다. 이 작은 성취가 하루의 균형을 잡는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집 안은 금세 다른 세상이 된다. 물 끓는 소리, 옷 갈아입는 소리, “엄마 물!” 하는 목소리. 그 소리들 사이에 내가 있다.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재생된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세탁기 끝났는데 빨래 널어야지.’
‘간식거리가 남아있나.’
등교 후 남은 적막은 오래가지 않는다. 커피 향이 퍼질 무렵이면 머릿속엔 다시 내 이름이 아닌,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채워진 할 일들이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의 일정표, 학원 시간, 픽업 동선. 모든 걸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문득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하루로 채워 넣게 되었을까?
오후의 간식은 늘 간단하다. 하지만 항상 따뜻한 간식을 내어준다. 전자레인지에 작은 빵을 데우거나 에어프라이어에 치킨을 굽는다는 등 말이다. 초등 저학년까지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혼자 모든 걸 챙기던 첫째가 원하는 조건이 갓 해준 따뜻한 간식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는 동작인데 그 냄새가 집 안에 퍼질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게 아직은 내게 남아 있는 기쁨 같은 것이다.
저녁 무렵 학원 픽업을 나설 땐 잠시 숨이 멈춘다. 적으면 한 번, 많으면 두세 번. 고된 일과지만 그 시간만큼은 둘만의 세상이 된다. 사춘기 아들과의 대화는 늘 짧지만 묵직하다.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리고 가끔은 아무 말 없이 흐르는 침묵조차 소중하게 느껴진다. 둘째와의 시간도 다르지 않다.
“오늘은 내 얘기 먼저 할래.”
“엄마는 어릴 때 뭐 좋아했어?”
제법 성장한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내 안의 오래된 시간들이 불쑥 깨어난다.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가 거의 다 기울어 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았지만 오늘만큼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누구에게 들려주지 않아도 내 하루는 늘 자막이 많다. 그 자막 속엔 해야 할 일보다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문장들이 더 많다.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게 나의 전부는 아니겠지.’
‘그래도 오늘은 괜찮았다.’
이 문장들을 마음속에 띄워두며 조용히 불을 끈다. 그렇게 하루가 닫힌다.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