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부른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서는 시간

by 은하


아이에게서 한 발 물러서고 나니, 이상하게도 비어있던 한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아이만 바라보느라 정작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시선을 거두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엄마로 살아온 시간은 길고도 치열했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아이를 위해 버텨야 할 이유는 너무도 분명했기에, 기꺼이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러다 결국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후회는 없었다. 그 시절엔 아이 곁에 머무르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게 정리된 뒤, 덩그러니 남은 마음에 조용한 질문 하나가 찾아왔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왜 여기 있는가.'



아이들이 자랄수록 그 질문은 더 선명해졌다. 아이들은 곧 자기들의 자리를 찾아 떠날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 부모라는 울타리를 넘어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들만의 자리가 아니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자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훗날 아이들이 둥지를 떠났을 때, 그리고 언제든 다시 돌아왔을 때 편안히 앉아 쉴 수 있는 '엄마의 자리'를 단단하게 지키고 싶었다. 그곳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내 고유의 시간과 일이 필요했다. 엄마로서의 삶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공존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는 엄마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이 분명 살아가는 힘이 될 것이다. 함께 웃었던 기억, 같이 버텨냈던 그 치열했던 하루들. 그 추억들은 아이들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발밑을 받쳐주는 조용한 기반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이제 이름을 다시 불러보기로 했다. 누군가의 엄마, 누구의 아내라는 수식어를 떼어내고 온전한 사람으로서. 잃어버린 이름을 찾는 일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다만 현재의 마음에 정직해지는 일에 가깝다.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뛰었는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여전히 엄마이고, 동시에 한 개인이기도 하다. 예전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두 자리를 나란히 놓아두고 싶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스스로 서는 일은 지금도 조용히 진행 중이다.








스스로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게 엄마와 자신을 모두 지키는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의 자리는 한 걸음 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