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결정한 건 대단한 결심이라기보다,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서늘한 자각에 가까웠다. 의사는 쉬어야 한다고 했고, 남편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 전화를 걸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휴직이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흘러갔다. 마치 원래 정해져 있던 수순을 밟는 사람들처럼.
막상 텅 빈 시간이 주어지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아프기 전에는 늘 시간에 쫓겨 헐떡였는데, 정작 멈춰야 하는 시간이 강제로 주어지니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것이다.
그날 우리는 집 근처 공원을 걸었다. 사실 이곳은 2년 전,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 바로 앞에 있던 곳이었다. 그때는 공원이 정말 코앞에 있었지만, 일에 치이고 육아에 쫓기느라 정작 그 좋은 산책로를 한 번 제대로 걸어본 기억이 없었다. 창밖으로 빤히 보이던 그곳은 우리에게 휴식처가 아니라 그저 풍경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사를 가고, 공원과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로 아주 조금 멀어진 지금에서야 우리는 그 길 위를 나란히 걷고 있다. 가장 가까이 살 땐 누리지 못했던 호사를, 몸이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남편은 천천히 걷는다. 예전보다 보폭이 눈에 띄게 줄었고, 가끔 숨을 고르는 듯 멈춰 서기도 한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그 옆에서 조용히 속도를 맞춘다. 우리 사이에 많은 말은 오가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고, 굳이 침묵을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날은 충분했기에.
걷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든다. 바로 눈앞에 행복을 두고도 보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삶이란 게 늘 이런 식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여유가 넘쳐서가 아니라, 멈춰 서게 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날의 산책은 어떤 대단한 깨달음을 얻는 시간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이제 예전의 속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발바닥의 감각으로 조용히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천천히, 잃어버린 계절 속을 걷는다.
< 곁에 두는 말 >
: 가까이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 멀어지고 멈춰 서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이전의 속도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서로의 보폭을 맞출 기회가 왔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