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잠시 내려놓고 쉬는 동안, 우리는 자주 밖에서 밥을 먹었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집에만 있으면, 집안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아픈 기억들 속으로 자꾸만 가라앉을 것 같아서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 뭐 먹을까"라는 말을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그 사소한 질문이 그날의 기분을 정하고, 하루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만 같다.
아프기 전의 식사는 늘 해치우는 일에 가까웠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삼키거나, 맵고 짠 배달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으니까. 내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혀가 원하는 자극이 더 중요했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멈춤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의 식탁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우리는 일부러라도 건강한 맛을 찾아다녔다.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심심한 나물 반찬이나, 야채가 수북이 나오는 쌈밥집을 찾아 지도를 뒤적였다. 혀를 찌르는 붉은 양념 대신, 흙내음 나는 초록색 야채들을 접시 가득 채웠다. 내 몸을 해치지 않는 순한 맛, 남편의 혈관을 맑게 해 줄 것 같은 음식들. 우리는 그렇게 밥상 위에서부터 조금씩 일상을 고쳐나가고 있었다.
남편은 천천히 입맛을 되찾아 갔다. 조영술 이후 몸 상태가 안정되면서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커다란 상추에 현미밥과 나물을 얹어 크게 한 입 넣고 오물거리던 그가 무심하게 툭, 한 마디를 던진다. "이거 괜찮네. 속도 편하고." 그 말이 유독 크게 들린다. 음식이 괜찮다는 말이, 마치 이제 내 몸도 괜찮아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들려서였을까. 팽팽했던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건강한 음식을 앞에 두고 마주 앉는 시간. 그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오늘을 무사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다시는 아프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이다.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지도, 화려한 사진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저 따뜻한 밥과 넉넉한 야채, 그리고 말없이 마주 앉아 나누는 온기면 충분하다. 돌이켜보면 그 불안했던 시기에 우리가 가장 잘한 일은, 애써 좋은 것을 챙겨 먹으려 노력한 일이었다. 몸이 회복되기 전에 마음이 먼저 지치지 않도록, 몸이 스스로 일어날 힘을 낼 수 있도록.
아픔은 삶을 아주 작고 초라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작아진 하루 안에서 붙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생명력, 먹는 일에 정성을 쏟았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정말 잘 먹었다. 그건 우리가 다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가장 간절하고도 정성스러운 방식이다.
< 곁에 두는 말 >
: 푸릇한 자연의 재료는 뾰족했던 마음도 조금은 순하게 만드는 듯합니다. 때로는 내 몸을 아끼는 건강한 한 끼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