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술을 마치고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는 나름대로 잘 지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챙겨 먹고, 무리하지 않으려 애썼으며, 예전보다 조금 더 느리고 조심스럽게 살았다. 겉으로 보기엔 더없이 평온한 날들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다시 가야 하는 날, 이른바 재검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별한 증상이 나타난 것도, 갑자기 쓰러질 것 같은 전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달력에 표시해 둔 그 날짜만 떠올리면 명치끝이 서늘해졌다.
'혹시 다시 막혀 있으면 어떡하지.'
'괜찮다고 했지만, 그건 3개월 전의 이야기잖아.'
괜히 달력을 자주 확인하게 된다. 병원 예약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 아직 오지도 않은 걱정을 미리 꺼내어 꼼꼼하게 살핀다. 불안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든 틈새로 스며드는 것만 같다.
병원에 가는 날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남편은 덤덤해 보였다. 평소처럼 옷을 입고, 차분하게 신발끈을 묶었다. 현관을 나서며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괜찮을 거야." 그 말이 안심시키려는 위로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거는 주문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그 떨리는 등 뒤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병원 복도는 여전히 길었고, 검사실 앞의 플라스틱 의자는 변함없이 차가웠다. 계절이 바뀌고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공간의 공기는 그대로 멈춰있는 듯하다.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 앞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그 짧은 몇 분이 마치 몇 시간처럼 길게 늘어져 온몸을 짓누른다.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모니터 속 복잡한 혈관 사진을 가리키며 의사가 설명을 이어간다. 혈류의 흐름, 수치, 협착의 정도.. 전문적인 용어들은 여전히 낯설고 어려웠지만, 단 한 문장은 또렷하게 귀에 박힌다.
"지금은, 아주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내려앉는다. 안도였다. 하지만 그 안도는 환호성을 지를 만큼 가벼운 기쁨이 아니었다. 물속에서 오랫동안 참고 있던 숨을 수면 위로 올라와 겨우 토해내는, 그런 절박한 안도감에 가까웠다. 잘 유지되고 있다는 말 뒤에는 늘 조건이 따라붙는다. 계속 약을 먹어야 하고, 계속 식단을 관리해야 하고, 계속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들. 우리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완전히 끝났다는 이야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병원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조용히 생각한다. 회복이란 건 '완치'라는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니라, '지금은 괜찮다'는 쉼표를 계속해서 확인받는 과정이라는 걸.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기다림은 병원 접수창구에서만 시작되는 게 아니라, 괜찮다는 말을 듣고 돌아선 그 순간부터 다시 마음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또 한 번의 쉼표를 찍고, 집으로 돌아간다.
< 곁에 두는 말 >
: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서도 문득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습니다. 그 불안은 의심이 아니라, 이 평범한 하루를 더 오래 지키고 싶다는 간절함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