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건강은 숫자가 아니다

by 은하

아프기 전까지, 나에게 건강은 철저히 숫자의 영역이었다. 건강검진 결과지에 찍힌 혈압 수치, 콜레스테롤 지수, 그리고 항목마다 선명하게 박혀 있는 정상이라는 두 글자. 그 숫자들만 안정권에 머물러 있다면 내 몸도 당연히 평온한 상태인 줄로만 알았다. 숫자가 괜찮으니 나도 괜찮은 것이라고, 일종의 면죄부를 받은 기분으로 매일을 살았다.




하지만 병은 그 정교한 숫자들 사이의 빈틈에서 조용히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느껴졌던 참을 수 없는 두통, 눈앞이 캄캄해지던 아득함, 그리고 쉴 새 없이 밀려오던 구토와 고열까지. 돌이켜보면 그 모든 증상은 어느 날 아침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재앙이 아니었다. 몸은 이미 여러 번, 아주 미세하고도 간절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다만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숫자가 정상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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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을 겪고 난 지금, 나는 이제 숫자보다 표정을 먼저 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난 남편의 눈빛에 피로가 섞여 있지는 않은지, 평소보다 말의 속도가 느려지지는 않았는지, 혹은 평소보다 조금 더 가라앉아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수시로 질문을 던진다. 오늘 마음이 유독 예민하게 날 서 있지는 않은지, 몸 어딘가에서 보내는 작은 비명을 또다시 '별것 아니겠지'라며 누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병원에 간다. 검사를 받고, 의사의 모니터에 뜬 수치를 확인하며, 전문가의 소견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분명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숫자에만 온 마음을 다해 매달리지 않는다. 건강이란 완벽하게 통제하고 정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내 몸을 함부로 밀어붙이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더 일찍 쉬며, 참는 것이 미덕이라 믿었던 예전과 달리 조금 덜 참는 것. 무언가를 더 많이 해내고 성취하는 것보다, 지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핸들을 꺾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법임을 안다. 건강은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몸을 대하는 정성스러운 태도이며, 삶을 지속해 나가는 적절한 속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며 애쓰는 마음 그 자체다. 아프고 나서야, 숫자가 말해주지 않던 진짜 건강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 곁에 두는 말 >


: 숫자가 주는 안심 뒤에 숨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내 몸이 내는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오늘 내 몸은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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