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일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즈음, 이번엔 내 차례였다. 종합검진 결과지에는 '정밀검사 필요'라는 문장이 무심하게 적혀 있다. 크게 놀라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종이를 쥔 손끝에 닿는 공기가 서늘하다. 조직검사 결과는 자궁경부 상피내암. 의사는 기저막을 침범하지 않은 단계, 즉 암으로 발전하기 전인 제자리암이라고 설명한다.
"조기에 발견해서 다행입니다."
그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이상하게 서글픔이 밀려온다. 암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암의 이름을 빌려 설명해야 하는 병. 분명 다행인 상황인데도 마음 한구석엔 설명하기 어려운 그늘이 드리운다.
돌이켜보면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의 건강검진 결과지 구석에 적혀 있던 '주의' 혹은 '추적 관찰 필요'라는 작은 글자들. 그때마다 나는 '별일 아니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 안일함이, 그 무심함이 어쩌면 일을 이토록 키운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이 뒤늦게 밀려온다. 몸이 보내는 작은 경고들을 외면하며 버틴 시간이 후회라는 이름으로 가슴을 친다.
레이저 시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길은 남편을 배웅하던 그날과 참 많이 닮아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내가 환자복을 입고 차가운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뿐이다. 시술은 비교적 빠르게 끝났지만 마음의 소요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산정특례 대상이 된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비로소 현실이 선명해진다. 아, 나는 지금 ‘암 환자 범주’에 포함되는 사람이구나. 겉으로는 담담한 척 웃어 보였지만, 속에서는 공들여 쌓아 온 무언가가 조용히 무너져 내린다.
남편의 병을 겪는 동안 나는 줄곧 보호자였다. 의사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받아 적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흔들리는 사람을 붙잡아주는 역할. 그게 나의 소명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몸의 결과지를 온전히 나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환자가 된 것이다. 다행히 시술은 잘 끝났고, 지금도 나는 정기적으로 병원 문을 두드린다. 몇 달에 한 번씩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처음 진단을 받던 날의 공기가 떠오른다. 괜찮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 간절하던 시간, 그리고 그 말을 듣고도 완전히 안심하지 못해 서성이던 마음들.
나는 삶으로부터 두 번이나 경고장을 받은 사람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몸은, 참고 버티는 것에 익숙한 사람에게 결국 가장 정직한 신호를 보낸다는 것을. 이제 누군가의 보호자이기 전에, 내 몸을 가장 먼저 살피는 보호자가 되어보려 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게 온 두 번째 경고가 전하고 싶었던 진짜 메시지일지도 모르니까.
< 곁에 두는 말 >
: 누군가를 돌보는 마음만큼이나 나를 돌보는 마음도 정성스러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나는 지금, 내 몸의 다정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