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또 막힐 수 있다는 말

by 은하


조영술을 마친 뒤, 우리는 교수님의 진료실로 다시 들어섰다.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 의사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했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심장을 더 세차게 뛰게 했다. 기적처럼 혈관이 다시 열렸다는 말 뒤에, 조심스러운 경고가 꼬리표처럼 따라온다.


"지금 상태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경우입니다. 하지만 혈관은 언제든 다시 막힐 수 있어요."






기적과 재발이라는 정반대의 단어가 한 문장 안에 공존하고 있다. 안도의 숨을 내쉬어야 할지, 더 바짝 긴장해야 할지.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위태롭게 흔들린다. 교수님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조금은 일상적인 예를 들어 설명을 이어갔다.


"찬 바람을 쐬고 몸을 움츠리는 순간에도, 천장 도배를 하던 분이 고개를 드는 순간에도 갑자기 쓰러지기도 합니다."




혈전이라는 건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예고 없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한참 뜸을 들인 뒤, 교수님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가족력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혈관 질환은 유전적 경향도 있으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심혈관 질환으로 혈관에 스탠트를 넣으셨던 기억. 그때는 그저 남의 일처럼 느꼈던 일인데, 이제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되어 겹쳐지고 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을 나설 때까지도 교수님의 마지막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적은 일어났지만, 그 기적이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다는 냉정한 사실. 앞으로는 오랜 시간 약을 챙겨 먹어야 하고, 술과 담배는 물론 생활 전반을 조심해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 설명들은 위협이라기보다, 이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삶의 방식인 셈이다.



화면 캡처 2026-02-04 232008.jpg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같은 생각을 반복한다. 이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라는 것. 아프기 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갈 수는 있다는 것.




그날 이후, '괜찮아질 거야'라는 막연한 말 대신 '조심하며 살자'라는 실질적인 다짐이 우리 집의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폭풍처럼 찾아온 기적은 지나갔고, 이제는 잔잔하지만 치열한 관리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 곁에 두는 말 >


: 기적은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것을 지켜내려는 매일의 묵묵한 다짐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평범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 ‘기적 이후’의 시간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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