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이누 모모의 이야기 1
첫 만남
나는 시바이누. 2024년 11월 13일에 태어났다. 아직 이름은 없다.
내가 태어나 처음 본 세상은 가로세로 30~40cm 남짓한 유리상자. 바닥은 차갑고, 사방은 투명한 벽으로 막혀 있다. 플라스틱인가?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내 일상은 단순하다. 사람들은 바삐 오가는 사거리에서 가끔 유리창 너머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하지만, 우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대개 이내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끼를 부려야 한다.
내 특기는 세상에서 가장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낑낑대기. 꼭 안아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온몸을 던지는 것이다.
"날 선택해! 날 보라구!"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냥 지나쳐버린다.
"바보들, 딱 한 번만 나를 안아보면 내 매력에 빠질 텐데!"
도대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내 옆자리 웰시코기 녀석은 타고난 장사꾼이다. 끊임없이 꼬리를 흔들고 애교를 부려서,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그리고 결국, 들어온 사람들은 웰시코기만 보고 나가버린다. 이건 다 자리 탓이다.
"오늘도 공쳤네."
그렇게 무료한 평일 오후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키가 180cm는 족히 돼 보이는 잘생긴 인간과 그보다 훨씬 작은 자그마한 여자 인간이 들어왔다.
물론, 기대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웰시코기 녀석의 잔꾀에 빠져들겠지. 그리고 옆에 있는 하얀 털 뭉치들(말티즈나 비숑)에게 한눈을 팔다가 돌아가겠지.
난 이미 익숙한 결말을 알고 있기에, 그저 턱을 괴고 누워있었다.
"오늘은 쟤인가?"
그런데, 예상과 달리 두 인간이 웰시코기를 보다가 힐끗, 나를 본다.
흠… 나를 데려갈 인간들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번 움직여나 볼까?
작은 여자 인간이 내 앞에 멈춰섰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큰 남자 인간에게 속삭인다.
"얘도 예쁘다!"
그래, 예쁘다라고 했으니 꼬리를 한 번 흔들어 주자.
두 인간이 활짝 웃었다.
"역시 내가 움직이면 정신을 못 차리지~"
그런데… 그들의 다음 말이 뜻밖이었다.
"사실 홈페이지에서 유기견도 있다고 해서 보러 왔는데…"
"유기견 보호실은 저쪽이에요."
"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기견 보호실로 걸어가 버렸다.
"아니, 저러면 안 되는데? 여기 너무 답답한데…"
잠시 후, 유기견 보호실을 둘러본 두 인간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래, "역시 내 매력을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이제 본격적으로 한 번 꼬셔볼까?
좀 전보다 훨씬 더 불쌍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두 인간을 번갈아 보며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아직 다리가 짧아 두 발로 서기는 힘들지만, 최대한 어설프게 미끄러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떡해~ 진짜 예쁘다."
"한 번 안아보시겠어요?"
"좋아, 이 가게 주인 인간이 장사를 좀 할 줄 아는군!"
"안아봐도 돼요? 우와~~~"
여자 인간이 나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하지만, 아니… 그렇게 안으면 내가 좀 불편하다고!!
살짝 낑낑댈까 고민했지만, 얼굴을 보니 착한 인간들 같아서 참았다.
그렇다면… 필살기 한 번 써볼까?
어설프게 날 안고 있는 이 여자인간의 손과 얼굴을 아주 정성스럽게 핥아주었다.
"꺄악! 얘가 나한테 뽀뽀했어~~~ 어떻게 해?"
"엄마, 나도 줘봐!"
"오호라~ 엄마와 아들이군?"
그럼, 필살기 2탄 준비!
남자 인간에게 안겨서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살짝 꺾어 최대한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완전히 넘어오겠지.
그런데…
그들의 다음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얘는 종이 뭐예요?"
"시바이누예요. 시바견 아시죠?"
"아~~~ 얘가 시바예요? 난 그냥 발바리인 줄 알았는데~~~"
"……."
아…
이 인간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그냥 무작정 온 거였구나.
"쉽지 않겠는데?"
하지만… 뭐, 괜찮아.
초보 집사라면 훈련시켜서 키우면 되지!
"이 인간들은 처음이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집사 훈련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