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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나를 반성하며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2024)(조승리 에세이) 읽고

by 박병수

2023년은 내가 처음으로 샘터 문예공모전에 생활 수필을 제출했던 해다.

첫 제출을 한 해에 대상을 받았던 작품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나는 '시각장애'라는 아픔과 힘든 현실 속에서 신념을 지켜내는 경험이 대상 작가의 '글 솜씨'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의 글은 단순히 시각장애라는 특수한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녀가 오랜 시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다듬어온 내공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책을 읽었다고 밝히는 인터뷰에서, 시력을 잃은 후에도 점자 도서와 오디오북으로 꾸준히 독서를 이어갔다는 작가의 말에서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다독의 흔적은 문장의 리듬이나 단어 선택에서 묻어 나온다.

글쓰기 경험이 에세이 곳곳에서 보여 자연스러운 흐름과 유머로 드러난다. 고난을 피해 가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태도에서 내력을 느꼈다.


조승리 작가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에서 '보다'라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체크를 해봤다.

그녀가 후천성 시각장애인으로서 시력을 잃은 뒤에도 '보다'를 일상적인 언어로 자연스럽게 쓰는 건, 아마 과거의 시각적 기억과 현재의 감각적 경험이 융합된 독특한 표현 방식이 아닐까. 전맹 상태에서도 '시간을 보았다'거나 (고객의) '손톱발톱이 꼴사나워 보였다'는 식의 문장은 물리적인 시각이 아니라 마음의 눈, 즉 상상력과 직관으로 재구성한 그녀의 감각이다. 단순히 습관적인 언어 사용을 넘어, 시각적 이미지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작가의 태도로 읽혔다.


반대로, 후각과 청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대목들도 인상적이다.

시각을 대체하는 다른 감각의 예민함이 잘 드러난다. 유흥업소 직원 '향수녀'와의 에피소드에서는 향수 냄새가 캐릭터를 정의하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장애인 돌봄 지원사 수미 씨와의 대화에서는 소리와 말투로 그녀의 존재감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런 묘사는 시각장애인의 세계에서 후각과 청각이 얼마나 중요한 정보 전달 수단이 되는지, 작가가 그 감각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활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러 표현의 대비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그녀의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시각을 잃었지만 여전히 세상을 '보고', '다른 감각으로 더 풍부하게 세상을 느끼며', 그 모든 '지랄맞음'들을 축제로 승화시킨다.


2023년의 나는 그녀의 아픔이 글 솜씨를 만들었다고 건방진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나의 잘못을 고한다. 그녀의 다독과 글쓰기 경험, 삶을 태하는 태도가 그녀의 글이 되었다.

가족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소재를 가지고 삶의 단단함과 유머를 끌어냈다면, 2023년의 나는 어땠을까? 나는 나 자신에게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서 쓰지 못한다는 핑계를 댄다. 실제로는 다독하지 않아서, 생생각할 시간을 만들어내지 않아서 쓰지 못한다. 내 감정과 일상을 기록할 최소한의 시간마저 내 일과에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다독과 생각할 시간을 더 쏟아봐야, 2023년에 쓰지 못했던 깊이가 새롭게 채워지지 않을까? 다시 글을 시작하는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을까.




조승리 작가는 경리가 꿈이었는데, 열다섯 살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해 전맹이 된 후천성 시각장애인입니다.

작가는 2023년 샘터 문예공모전 생활수필 부문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제가 소개한 책은 그녀의 첫 단행본입니다.


책에서는 장애인으로서, 안마사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딸로서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힘든 현실 속에서도 축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출간 후 입소문을 타며 6개월 만에 10쇄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출판사와의 섹시한(?) 질문을 통해서 얻어진 제목의 영향일까요? 아니면 그녀의 준수하고 거침없는 문체 때문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더 탐구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 이 책에게 마음속의 평점을 만점만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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