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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온도 차이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하여

by 박병수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석한 지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누군가 억지로 권유해서 나가게 된 모임이 아니라, 다양한 책을 두루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관계다. 1년쯤 지났을 때, 독서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감상을 나누다가 '고명재'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말을 하다가 내 나이에 대한 힌트가 흘러나왔고, 그때 향이 그윽한 커피를 따르고 있던 홍 선생님이 물어봤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중학교 동창 모임, 군대 동기 모임, 직장 골프 모임에서는 나오지 않는 질문이다.

자발적으로 희망해서 나가기 시작한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나이'를 안다는 건 서로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다. 여러 가지 소재들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단서가 생기고, 자신과 동년배의 작가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할 때 조금 더 깊이 있게 듣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 비슷한 질문을 들은 날이 떠올랐다.


지난달, 아이 학기가 시작하고 학부모 독서지원단의 첫 모임이 있었던 날이다. 가정통신문에 담긴 '독서'라는 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O'표를 해서 보낸 뒤 시작하게 된 활동이다. 학교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 이미 한번 통화를 한 사서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건네 주신 비타민 음료를 받아서 자리에 앉았을 때 선생님이 나를 제외한 다른 독서지원단 학부모들은 모두 총회에 참석하고 와야 해서 조금 늦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셨다. 조용히 대답을 한 뒤, 이번 독서모임 선정도서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다른 학부모들이 다 왔을 때,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나를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다른 학부모들은 서로가 서로를 아는 사이였다. 사서 선생님이 독서지원단 활동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모든 학부모 모임이 그렇듯 대표와 부대표를 선정해서 교장 선생님께 보고해야 한다는 어려운 주제를 넌지시 꺼냈다. 그때 나를 보며 한 학부모가 말했다. "이 자리에 남성 분이 한 명밖에 없네요. 기념적으로 대표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게 말한 학부모는 작년 1년 동안 학부모 총회 전체 대표를 하고 받은 공로패를 들고 있었다. "어머, 좋아요. 모두 박수!!" 이렇게 말한 학부모는 올해 학부모 총회 전체 대표 선거에 나갔다가 대표를 맡지 못하고 부대표를 맡았다고 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대표 또는 부대표를 맡으면 지원단 활동을 할 때마다 다른 학부모들에게 연락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어 얼른 고사했다. 손사래를 치며 하지 않겠다는 내 말을 들은 다른 학부모들이 이때다 싶었는지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내 나이가 몇인지, 평일에 참석해도 괜찮은 건지, 아이는 어디 학원에 다니는지, 왜 아이 엄마는 한번도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는지 등


독서지원단 활동 첫 모임이 어떻게 끝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때마침 아내가 학교 도서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 얼굴이 마치 퇴근했을 때처럼 수척해 보인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괜찮아요? 도서관으로 들어가던 다른 학부모들은 모두 엄마인 것 같던데"

나는 대답했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겠죠. 확실한 건 오늘 독서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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