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공부》(최광현 지음, 한국교육방송공사, 2022)
토요일 오후, 익숙한 도서관에 들어서면 늘 같은 냄새가 먼저 반긴다. 오래된 종이들과 사람들의 체취가 섞인 그 이름 붙이기 어려운 그 냄새. 창가 자리에 앉았다. 오후 햇살이 책상 위로 비스듬히 내려앉았고, 먼지 몇 점이 그 빛 속에서 천천히 부유했다.
그 곳에서 《가족 공부》를 꺼냈다. 여러 손을 거친 책 특유의 무게감이 손바닥에 걸렸다. 몇 장을 넘기자마자 연필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출판된 책에 남아 있는 오타마다 누군가 작은 동그라미를 쳐두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시선이 페이지마다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 그가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너도 이거 걸렸지?'
'응, 나도 그래'
혼자 읽고 있었지만,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과 함께 동화책을 펼쳤다. 그날 밤 고를 책을 두고 아들과 한참을 실랑이한다. 아들은 어제 읽은 책을 또 펼친다. 같은 장면을 더 재미있게 읽어달라고 요구한다. 나의 육아는 참 서툴다. 가끔 치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거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래도 가끔 아이가 보내는 작은 미소 하나가 나를 하루치 위로로 데려다 놓는다.
최광현 교수는 책의 한 대목에서 이렇게 썼다.
'얼핏 생각하면 상처는 가족 바깥에서 벌어질 것 같지만 의외로 상처가 처음 태어나는 근원지가 바로 가족인 것입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믿어왔으니까.
그런데 다시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목소리가 커졌던 여러 날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대하고, 기대하다가 실망하고, 실망했을 때는 상처를 줬다. 가장 깊은 상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다. 일체감과 안정감을 원한다면,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 아들과 눈을 맞추던 그 한 박자의 침묵처럼. 건강한 가족은 완벽한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라, 더 나아지려는 사람들의 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