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즈음- 버스에서 내렸다.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낯선 거리였다.
우리는 더 알기엔 부족했던 시간을
수다로 채워가고 있었다.
"너는 뭐 좋아해?"
이런 것들을 묻는 사이에 우리는 왜 그 거리를 걸었을까.
"나는 서태지."
그 친구는 서태지의 팬이었는데
서태지의 음악을 들어야만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그 시간 이어폰으로 들었던 서태지 음악은
잠을 이루기엔 오히려 각성 효과만 일으키는 거 같았다.
실제로 수면 연구에 따르면,
잠들기 전 음악은 분당 60~80비트 정도의
느린 템포와 낮은 음량일 때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내가 국어선생님의 목소리를 찾는 이유다.
느린 템포와 낮은 음량.
"머리스타일을 바꿔볼까?"
나는 그때 머리스타일을 바꾸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다.
쿨의 유채영처럼 삭발을 도전할까 했다.
무언가를 확 바꿔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즉흥적인 사건에는 늘 후회가 동반된다는 게
현실적인 문제였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한 기분전환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삶이 나를 바꾸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p372
"모든 진실은 구불구불하다." 니체가 말했다. 모든 삶도 마찬가 지다.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난 후에야 과거를 돌이켜보며 서사를 매끄럽게 다듬고 패턴과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지그재그다. 여백도 있다. 과거의 자신을 막 모습을 드러낸 미래의 자신과 갈라주는 텍스트 사이의 빈 공간. 이 여백은 무언가가 누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백은 무언의 과도기이며, 우리 삶의 흐름이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우리가 나누던 주제는 매번 달라졌지만,
어딘가 비슷한 교차점이 있었다.
나는 친구가 왜 서태지 없이는 잠들 수 없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친구는 내가 왜 삭발을 고민하는지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 같은 모순 속에 있었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지만 바뀌는 게 두렵고,
안정을 갈구하면서도 탈출을 꿈꾸는 것.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본적인 딜레마.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별의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했다.
138억 년 전 빅뱅에서 시작된 원자들이
수십억 년에 걸쳐 별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 별이 폭발하며 우주로 흩어진 뒤,
다시 모여 지구를 이루고, 생명이 되고, 결국 우리가 되었다고 한다.
변화는 우주의 본질이다.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별도, 은하도, 우리도.
그러니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하는 건,
모순이 아니라 우주적 본능인지도 모른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한참을 대화하고 나서, 그 시간 나오던 음악은 '컴백홈'(??)이었다.
돌아오라는 노래였다.
마침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