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다.
연말이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아쉬움과 안도감이 섞여 있고,
반성과 기대가 공존한다.
'올해는 이렇게 보냈구나' 싶으면서도
'내년엔 달라질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정리해야 할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말의 이 아쉬움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완벽하게 끝낼 수는 없어도,
적어도 오늘 하루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찾게 되는 것들이 있다.
크지 않지만 확실한, 작은 행복들.
영화를 보고 싶은데 영화관 가기는 귀찮고
뭘 봐야 할지는 모르겠다면
영화 리뷰를 찾는다.
좋아하는 리뷰어를 하나 찾아두면 편하다.
편의점에서 각종 간식 사들고 집에서 본다.
소소한 나만의 문화생활이 된다.
이불을 빨아서 건조기에 돌리고,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바로 꺼낸다.
그 뽀송한 촉감과 따뜻함은 그 어떤 위로보다 확실하다.
저녁에 그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는 느낌이 든다.
깨끗한 이불은 그날 밤 숙면을 약속한다.
주말 오전, 늦게 일어났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배는 고팠다.
배달 앱을 열었다가 그냥 냉장고를 열어봤다.
계란 식빵 과일 등등..
스크램블을 하고 식빵에 잼을 바르고
테이크아웃한 아이스아메리카노까지 있으니
대충 브런치가 되었다.
10분 정도에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나의 기분을 나아지게 했다.
때로는 작은 성취가 위로가 된다.
일단 좋아하는 핸드워시를 하나 장만한다.
그리고 손 씻기를 하루의 구분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첫 손 씻기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
점심 먹기 전 손 씻기는 오전과 오후를 나누는 경계.
잠들기 전 손 씻기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
매번 향 좋은 비누로 천천히,
정성스럽게 씻는다.
손가락 사이, 손톱 밑, 손목까지.
물로 헹군 후 남은 향을 맡으며 잠시 멈춘다.
이 작은 의식이 하루에 리듬을 만들어준다.
향기는 뇌의 변연계에 직접 작용해 감정을 조절한다.
손을 씻을 때 좋은 향의 비누를 사용하면,
단순한 위생 행위가 아로마세러피가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
오늘의 하늘,
창밖 풍경을 사진으로 찍는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사진이 아니라,
그냥 나를 위한 기록이다.
일기앱을 사용해 내가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도
메모해 둔다.
기록한 것은 나중에 열어보면
내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알게 된다.
사진은 기억을 붙잡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기분관리를 위한 나만의 플리목록을 만든다.
새로운 음악을 찾기보다,
확실하게 나를 위로해 주는 노래들의 목록을 만드는 것.
힘든 날이 오면 고민 없이 재생 버튼만 누르면 된다.
방 전체를 정리하려고 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친다.
책상의 한 구역,
딱 50cm × 50cm만 정리한다.
그 작은 공간이 깨끗해지면 성취감이 생기고,
그 성취감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진다.
작게 시작하는 것이 완벽한 시작보다 낫다.
저녁 7시, 환한 형광등 아래에서 하루를 보냈다면
이제 바꿔볼 시간이다.
형광등의 차가운 백색광은 각성 상태를 유지시킨다.
일하기엔 좋지만 쉬기엔 적합하지 않다.
저녁에는 따뜻한 색온도의 조명으로 바꿔보자.
스탠드나 무드등을 켜면 멜라토닌 분비가 방해받지 않는다.
빛의 방향도 중요하다.
위에서 내리쬐는 빛보다 옆에서 은은하게 비추는 빛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긴 일기가 아니어도 된다.
잘한 일 1줄,
감사한 일 1줄,
하고 싶은 일 1줄.
세 줄이면 충분하다.
쓰다 보면 오늘 하루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기록은 하루를 정리하는 행위이자,
내일을 준비하는 방법이다.
유통기한 지난 것들을 버리고,
선반을 닦고, 정리한다.
오늘은 냉장실
내일은 냉동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청소한 내부가 보이면
뿌듯한 마음과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물건은 공간만 차지하는 게 아니다. 정신적 공간도 차지한다.
안 쓰는 물건을 볼 때마다 '정리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스트레스가 된다.
하나씩 정리하면 된다.
당근에 올릴 만한 건 올리고,
아니라면 바로 처분한다.
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제 내 것이 아니다'라는 선을 긋게 된다.
팔리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물건이 되어 기쁘고,
안 팔려도 버리면 된다.
중요한 건 소유를 끝내는 결정이다.
물건이 줄어들수록 삶이 가벼워진다.
12. 좋아하는 향 핸드크림 바르기
손에 핸드크림을 천천히 바른다.
좋아하는 향이 손끝에서 올라오고,
그 향을 맡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진다.
핸드크림을 바르는 행위가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된다.
향기는 기억을 저장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오늘 쓴 소비에 대해 간단하게 적어본다.
항목과 금액만.
5분이면 된다.
영수증 확인하고,
카드 내역 보고,
메모한다.
많이 썼든 적게 썼든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기록한다.
일주일 후 다시 본다.
패턴이 보인다.
어디에 돈이 가는지, 왜 쓰는지.
기록만 해도 소비가 의식적으로 바뀐다.
기록은 변화의 시작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한 정거장 미리 내려걸어본다.
익숙한 동네인데 처음 보는 골목이 나타난다.
매일 지나치던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조금만 경로를 바꿔도 일상이 새로워진다.
오늘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짧게 적어 올린다.
긴 글이 아니어도 된다.
"오늘 하늘이 예뻤다"
"커피가 맛있었다" 같은 한 줄이면 충분하다.
공개적으로 기록하면 생각이 정리되고,
누군가의 공감이 돌아올 때 작은 연결감을 느낀다.
12월이 끝나가지만,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는 여전히 내 선택이다.
소확행은 연습이다.
오늘 하나, 내일 하나. 남은 페이지를 이렇게 채워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