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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 May 17. 2021

미나리 삼겹살 구이

고기를 굽고 채소를 볶는 태도

토요일 오후다.

삼겹살 한 덩이와 미나리 한 단을 조리대에 올렸다.

두툼하게 고기를 썬다.

진열대의 '삼겹살-구이용' 라벨을 나는 외면한다.

'저 빈약한 두께로 구이를 하라니. 가당치 않아.'

대신 '삼겹살-수육용'을 집어 든다.

인덕션 레인지를 켜고 팬을 가열한다.


'가정에도 중식당에서 쓰는 화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칠 정도로 초강력 불꽃의 예찬론자인 나는 문명의 이기 앞에 위선을 저질렀다.

작년에 가스레인지를 들어내고 설치한 인덕션 레인지에 정을 붙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하고 빠르며, 연기를 덜 발생시키며, 여름에 불을 쬐지 않아도 된다.

최고의 덕은 사방으로 튄 기름을 몇 번의 물티슈질로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구이와 볶음질은 뒷정리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단백질 덩어리를 굽는다.'는 것의 핵심은 두 가지다.

마이야르 반응을 이끌어내고 오버 쿡을 피하는 것이다.

꽤나 알려진 지식이 된 요즘에는 덜하지만 고기 굽는 자리에서 나는 쓸데없이 지랄 맞은 캐릭터였다.

특히나 1인분에 4만 원씩 하는 소등심을 뒤적거리는 꼴을 보고 있자면 집게를 빼앗지 않을 수 없다.

잔소리할 위치가 아닐 때는 "제가 구울게요." 하며 착한 척을 한다.


삼겹살의 한 면이 튀겨지듯 할 때가 되면 겉면은 번들거리고 까슬한 갈색이 된다.

익힘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수시로 집게로 고기를 눌러보며 푹신함을 확인한다.

늘어난 팔뚝살처럼 출렁인다면 때가 아니다.

하드 타입의 매트리스 같다면 이미 때를 놓쳤다.

팬 위에서는 원하는 익힘에 못 미치게 조리를 끝내야 한다.

잔열은 접시 위에서도 고기를 익히기 때문이다.

반대쪽 색깔이 살짝 아쉽지만 더 익히면 안 될 것 같아 접시로 옮겨냈다.

조금 더 두껍게 썰었으면 좋았을 것을...  

고기즙을 소중히 여긴다면 가위질은 먹기 직전에 하는 것이 옳다.


미나리는 물기를 최대한 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나리볶음이 아니라 데침이 될 것이다.

팬에 남은 돼지기름이 지글거리도록 가열한다.

미나리를 투여하면 스팀이 뿜어져 나오며 '촤아-'하는 소리를 낸다.

기분 좋은 소리. 경력 있는 요리사가 된 듯한 기분.

후다닥 데치는 기분으로 손을 급하게 놀려야 한다. 죽여서는 안 된다. 반쯤 살려내야 한다.

돼지기름이 팬에 남아 있지 않도록 그렇다고 눅눅하게 스미지는 않도록 줄기와 잎 사이사이를 헤어 컨디셔너로 코팅하듯. 소금을 흩뿌려 마무리.


술 생각이 난다. 값싼 레드 와인 한 병을 꺼낸다.

와인 에어레이터는 고마운 물건이다.

즉흥적인 상황에서도 브리딩을 건너뛰는 죄를 면해준다.


제철 채소, 제철 생선은 있어도 '제철 고기'라는 표현이 어색한 것을 보면 고기 맛은 사계절 큰 차이가 없나 보다.

반면 같이 즐기는 그 산뜻한 것들은 계절마다 라인업을 달리하며 뻔한 삼겹살 구이도 특별하게 해 준다.

특히 봄철 연녹색의 어린 풀들은 고기의 존재감을 넘어선다.

5월의 주인공은 미나리와 마늘종.  

잘 구워진 고기의 즙에서 나오는 기름 맛과 감칠맛에 한 껏 만족하면서도 그 과도함이 입안을 점령할 때 등장하는 아삭하고 향긋한 미나리와의 산뜻한 마주침.

마늘종 장아찌의 새콤 달달함과 알싸함으로의 기분 전환도 그에 못지않다.


다 먹고 나니 와인 반 병이 남는다. 여기서 멈추는 것이 옳지만 그럴 리가.

냄비에 물을 끓이고 오전에 사 온 전복 몇 마리를 가볍게 데다.

껍데기에서 살을 분리하고 내장이 붙은 채로 가위로 토막을 내어 삼겹살이 사라진 그 접시에 담았다.

남아 있던 짭조름한 돼지기름에 전복을 버물였다.

시간이 짧게 느껴지고 와인은 빈 병이 되었다.


오늘 저녁에는 잠깐의 운동과 한 편의 글을 쓰려던 참이었건만...

먹고 마시는 것에 좀 더 소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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