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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 Jun 14. 2021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

제주에서 5일, 혼자의 시간 (3)

가고 싶은 곳도 가야 할 곳도 없으니 차를 빌리지 않아도 됐다. 흐리고 비 오면 숲으로, 해가 좋은 날은 바다로 가면 되지. 제주도 같은 좋은 여행지에서 꼭 어느 바다 어느 숲일 필요는 없다. 사실 것저것 따져가며 미리 갈 곳을 정하는 것이 귀찮다. 게을러서 발생한 손해는 나만 보면 된다. 혼자 와서 가장 좋은 점은 나의 결정으로 발생한 문제에 대해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 오다가 말다가 하는 오전에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 미술관에서 나와 비자림 가는 버스를 검색했다. 두 번의 환승이 필요했고 중간중간에 기다려야 할 시간은 예상할 수 없었다. 서귀포 올레 시장에서 첫 버스를 탔다. 중산간 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거칠다. 급출발, 급정거, 급커브에 익숙해질 때쯤 산 중턱에서 내렸다. 걸! 환승할 버스가 바로 와서 분이 좋았다. 것은 딘가 도시 사람 기쁨었다. 두 번째 버스를 타고 송당리에 내렸다. 다음 버스를 타야 되는데 40분이나 기다려야 .



자림까지는 5km, 그 정도면 걸을만하다.  마을에는 특색 있는 카페들이 몇 보였다. 40분 이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버스를 타도 된다. 선뜻 결정이 어려울 때 나는 걷는 쪽을 택한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다녀야 하는 경우라면? 나는 걷는 대신에 '송당리 카페'로 검색을 하고, 비교하고, 따져보고, 선택지를 제시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 책임을 피하려는 마음이  많은 선택지와 더 많은 선택 장애를 일으킨다.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마을과는 멀어졌다. 침 비를 머금어 어진 흙과 돌 게워내는 증기 냄새, 저마다의 안개구름을 붙잡고 있는 나지막한 오름, 지표를 덮고 있는 식생은 내가 사는 곳과는   좋고, 다양하고 끊임없는 새소리 혼자라는 생각을 잊게 한다. 걷기를 참 잘했다. 다만 산간의 도로는 인도가 없어 걷기에는 조금 위험했다. 차 소리가 나면 나는 가장자리 흙길로 피했고, 그런 나를 보는 차들은 중앙선을 살짝 어가며 나를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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