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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 Apr 06. 2021

격정 속에서 선택한 둔감

감정과 거리두기

어느 폭풍이 되어  너는

나의 슬픔들을 날리고 격정들채웠어.


오랫동안 피해자로 살았다며 이제는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너의 다짐은

누군가의 목적어로 살지 않겠다는

강건한 문체의 선언 같았.

것은 곧 내 역할 정 것 같았어.


뜬금없이 "나는 너 안 기다릴 거 같아."

라고 내가 말해 버 때

너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어.

나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며칠 동안 생각했었어.

'이번 관계는 내가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일종의 '인정' 같은 거였더라.


먼저 말을 걸어주고, 만나자고 하고,

만져달라고 할 때는 쉬웠지.

그런 요구들이 사라지면 참 어려워.

네가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 모두

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읽지 못다면 용기 내서 물어지.

그런데 그게 망설여지는 이유는

그 용기가 그저 강박에서 발생한

참을성 없는 가벼움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기다림못 참는다는 건

상대의 자유를 딱 그만큼

인정하는 것이지 않을까?


폭풍이 잔잔해질 때쯤에

나는 네가 나를 목적어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

다행히 네가 가져온 삶의 담론들에

몰입하느라 우울이 자주 느껴지지 않았어.


인간의 가치는

누군가에게 뭘 받았냐가 아니라

뭘 해줬냐 에 있더라.

네가 나에게 해주었던 것들은

나에게만 머물지 않

오랫동안 여럿 옮겨가겠지.


기약 없이 만나 그날 하루 기쁨인

사이도 나는 좋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혼자 달려온 이 감정은 둔감해져야지.


오늘이든 내일이든

몇 달이나 몇 년이 지나서든

네가 와준다면 기쁨일 거야.

왜냐면 너는 예의상 오지는 않을 것 같거든.

그렇다면 내가 기다리는 것은 아마

그날 서로 나눌 자유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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