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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강나무 Jan 19. 2023

투자 마인드십중용을 지키고 두려움에 초연해야한다.

올바른 투자 마인드십

중용 23장 - 작은 부분부터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중용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뜻한다.

우리들은' 신'이 아니며,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중용적인 삶의 태도를 지켜 나가야 하며 두려움의 존재로부터 흔들리지 않고 초연해야 한다.  

대중은 보통 감정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쾌락과 그 쾌락을 얻기 위해 어떠한 수단을 가리지 않으며, 쾌락과 반대로 가는 고통은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고 도망친다. 마찬가지로 현실에 직시하지도 않으며, 무엇이 좋은지 싫은지에 대한 감각조차도 없다. 

또한 대중심리는 전염병도 강하다. 어떤 사람이 하품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하품을 따라 하게 되고, 그들이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눈물을 흘린다면 똑같이 감정적이게 되고, 이성을 잃어버린다.  

중용을 지키는 것은 어떨 때는 가장 쉬울 수도 있으며 어려울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를 통해 과오를 범한 것들을 잊지 않고, 앞으로의 미래가 번복되지 않도록 교훈을 얻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나친 것과 모자란 것들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치우쳐 봐야 한다. 다른 입장들을 생각해 봄으로서 중용을 지켜 객관적으로 과거 현재를 직시해야만 미래에 나아갈 수 있다. 



역동적인 투자시장의 세계

투자시장의 역사도 반복된다. 누군가에게는 공포이기만 누군가에게는 기회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세 운동하는 주식들을 사모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치에 맞다.  하락과 상승을 예측을 할 수 있었다면 가격에 맞춰서 샀다가, 팔았다가 반복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투자시장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우리가 국고채, 금, 은, 달러 같은 안전자산을 샀을 경우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며, 내가 직접적으로 안전자산을 손에 쥐고 있고 눈으로 볼 수도 있으며, 안전자산들은 희소성이 있고 한정적이기 때문에 미래의 수요는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에 감정적으로 동요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면 미래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를 통해 판단을 해 야만 하므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처음에 생각했던 투자계획들이 흔들리게 되고, 끊임없는 대중 매체로부터 보이는 시세변동 폭과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기업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내용을 보게 되면서 동요하게 되고,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여러분은 이러한 두려움에 반드시 초연해야 하고 객관적으로 중용적인 자세로 바라봐야만 한다.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시장은 나의 계좌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나의 인생을 변화시켜줄 아름다운 예술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손자병법'의 13편의 글 중, 3편인 '모공편'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으나)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승과 패를 주고받을 것이며)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조차도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위태롭다) 

그렇다!. 손자병법에도 이르기를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미덕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것들이 미덕인지 악덕인지 충분히 구분할 줄 알고 중용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용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탐욕과 욕심, 쾌락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탐욕과 쾌락도 정도가 너무 지나치면 사람을 방탕하게 만들며, 이성적인 판단도 못하게 된다.

분노보다 이기기 힘들고 자제력 있게 통제 못하는 것이 탐욕과 쾌락이다. 분노는 이성적인 판단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어 내가 지금 왜 화가 나있고, 인과관계를 따지기며 상황이 납득이 되기에 분노를 하게 된다. 

그러나 탐욕과 쾌락은  정도가 없으며 오히려 갈증이 나서 더 갈구하며 본인 스스로 쾌락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밑 빠진 장독대처럼 물을  담아도 빠져나가 채울 수 없는 욕구이며, 한마디로 '이질적인 쾌락'이다.  그 이질적인 쾌락은 고통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반대로 쾌락이 너무 없어도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며 의욕적이지 않게 하여, 나태함으로 인하여 삶이 동기부여를 전혀 되지 않아 본인을 고립시키고, 정체시킨다.  

결국엔 우리는 쾌락과 나태함 사이에서 중용을 지켜나가야만,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중용적인 삶을 태도로 두려움들을 초연하게 다룰 수 있을까?

우리는 동물이 가지고 있지 않는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야 말로 사유하고 생각하는 삶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관조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올바르게 어떤 문제에 대해서 직면하여 심오하게 사색하고 고민하는 스스로의 시간을 가져라.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게 하고 쉽게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사유하고 관조적인 삶을 통해 어떤 역경과 어려움이 있어도, 유연하고 회복탄력성 있게, 쉽게 이겨낼 수 있으며, 어떤 악덕이 나의 행복과 삶을 해치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 상황에서 불안하고 걱정하는 부분을 통찰력 있게 배우고 사색을 통해 나를 더욱 초연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초연하게 된다면 냉철하게 올바른 판단력을 이끌고, 자연스럽게 나의 강점을 더욱 강하게, 약점 또한 강점으로 승화할 수 있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본성과 반대로 하는 내재적인 통제(중용)를 통해, 어제 보다 더욱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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