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시즌2]3부. 무조건성에서 조건성으로(8장)

8장. 시민서비스 의무 3000시간

by 밀리폭

시민서비스 의무(Civic Service Obligation)3,000시간은
한국형 기본소득이 선택한
가장 구체적인 책임의 형태였습니다.


이 의무는
다른 나라였다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미 국가가 시민에게 일정한 의무를 요구하는 경험을
집단적으로 공유한 사회였습니다.


성인 남성 다수가 병역을 수행하며
국가의 존속과 안전을
개인의 시간으로 감당해 본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시민서비스 의무는
갑작스러운 강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책임의 다른 이름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성인 진입기의 사회적 통과의례
시민서비스 의무는
성인이 되는 시점에서
처음 수행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일종의 성인식이었습니다.
권리 이전에
책임을 경험하는 시간,
공동체의 유지가
누군가의 몫이 아니라
모두의 몫임을 몸으로 아는 시간입니다.


24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4개월,
한 학기 정도의 기간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 시간을
삶에서 빠져나간 공백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1년6개월동안 성인남성에게만 병역을 지우고 그들만 감당해 왔던 시간을
모두가 한 번씩 나누어 맡는 구조로
재배치한 것이었습니다.


단 한 번, 그리고 매년 하루
이 의무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3,000시간을 완료한 이후에도
매년 하루,
시민서비스 참여가 유지되었습니다.


이 하루는
점검이 아니었고
통제가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사회와의 연결을 갱신하는
상징적 봉사 의무였습니다.
누구도 같은 날에 모이지 않았고,
누구도 집단적으로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각자는
자신이 선택한 날에
하루를 사회에 남겼습니다.


그날은
누군가를 감시하는 날이 아니라,
서로가 아직 여기 있음을
확인하는 날이었습니다.


병역의 재편과 확장
한국 사회에서
시민서비스 의무는
병역 제도와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병역은 이미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보편적 의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존 병역 제도는
한계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저출생으로
예비군 규모는 줄어들고 있었고,
병역은 점점
남녀갈등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병역을 확장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미 국가는 더 이상 대량 단기병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전은 드론, 사이버, 미사일, 정밀 타격, 정보전이라서 숙련도가 훨씬 중요해져,

오래 남아 숙련을 축적할 사람을 원했습니다.


시대에 맞춰 시민서비스를 통해,

짧은 시민병역을 기반으로 만들고,
확대된 직업군은 중심이 되었습니다.


시민서비스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전체 참여 인구의 약 80%가
병역 또는 병역에 준하는 공공 영역에서
시민서비스를 수행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시간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 구조의 재설계였습니다.


병역 수행이 어려운 경우에는
다른 선택지가 열려 있었습니다.


장애가 있거나,

와국인이거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들은
무장 영역이 아닌
비무장 시민서비스 영역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단순히 돌봄과 환경에 더 큰 관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의무는 사라지지 않았고,
형태만 전환되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기여는
무기를 드는 방식만으로만
증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민서비스는
항상 필요했지만
항상 부족했던 영역으로 향했습니다.


돌봄,
요양,

의료,

안전,
환경 관리,
재난 대응.


이미 누군가는 하고 있었지만,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시민서비스 의무는
이 노동을 새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존재하던 역할을
모두의 봉사로
공동의 책임으로
다시 위치시켰을 뿐입니다.


시간의 재정의


시민서비스 시간은
‘일한 시간’만으로 계산되지 않았습니다.


근무,
대기,
휴식,
수면까지
모두 시간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는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항상 움직임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반영한 설계였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자리를 지키는 시간,
사고를 막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
다음 근무를 위해
회복하는 시간 역시
사회에 기여한 시간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 원칙은
돌봄과 요양,
야간 대응과 상시 대기 노동의
가치를 다시 썼습니다.


사회는
이제서야 인정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든 시간이야말로
가장 많은 일을 해온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시민서비스 의무 3,000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책임의 형태였습니다.


이 의무를 통해
한국형 기본소득은
하나의 기준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사회에서
기여는
성과가 아니라
참여로 측정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다음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 참여는
어디에 기록되고,
어떻게 보상되며,
어떤 방식으로
삶을 다시 설계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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