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정기성 — 요람부터 무덤까지
한국형 기본소득이
보편성과 개별성을 선택한 뒤,
다음으로 마주한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지급할 것인가.”
한 번인가,
여러 번인가,
아니면 계속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지급 주기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삶을
사건으로 볼 것인가,
시간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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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이미
현금 지급의 효과를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입니다.
그 돈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의미하지도 않았습니다.
재난지원금은
국내 소비를 분명히 진작시켰고,
개인에게는
“당장 무너지지는 않아도 된다”는
짧지만 분명한 숨을 허락했습니다.
그 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재난지원금의 한계는
금액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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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의 가장 큰 한계는
정기성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언제 다시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다음이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은
계획의 일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장기적인 결정을 미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으며,
그 돈을 기반으로
삶의 구조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재난지원금은
도움이었지만,
기반은 아니었습니다.
몇 번의 지원은
순간을 버티게 할 수는 있어도,
시간을 설계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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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있는 바닥”의 의미
정기성은
금액보다 먼저
심리를 바꾸는 요소였습니다.
매달 반복되는 지급은
사람들에게 다른 질문을 허락했습니다.
“이번 달은 어떻게 버틸까”가 아니라,
“이 조건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정기성은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범위를 한정했습니다.
완전히 추락하지는 않는다는 확신,
바닥이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은
소비를 바꾸었고,
노동 선택을 바꾸었으며,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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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부터 무덤까지
한국형 기본소득은
정기성을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생애 전체의 조건으로 설계했습니다.
출생과 동시에 지급 대상이 되었고,
사망과 함께 지급은 종료되었습니다.
이 구조는
특정 시기에만 개입하는 복지와 달랐습니다.
태어나서 축하금으로,
취업 전 학원비로,
실직 중 실직수당으로,
아플 때 보험차원에서,
노년기에 이르렀을 때 연금으로,
기타 등등...
조건부로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라,
삶의 모든 구간에
항상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제도였습니다.
이 정기성은
사람을 특정 상태로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일하고 있는 사람,
쉬고 있는 사람,
돌보고 있는 사람,
준비 중인 사람 모두에게
동일한 주기로 작동했습니다.
삶을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으로 대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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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지원”과 “항상 있는 바닥”의 차이
한 번의 지원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입합니다.
항상 있는 바닥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건을 바꿉니다.
전자는
사후적 제도이고,
후자는
구조적 제도입니다.
재난지원금은
위기를 통과하게 했습니다.
기본소득의 정기성은
위기의 빈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사회 전체를 이동시켰습니다.
그래서 한국형 기본소득은
정기성을 선택했습니다.
더 많은 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이
매번 비상상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코로나, IMF, 기후위기같은, 갑자기 들어닥치는 비상사태에도 희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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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성은
사람에게 여유를 주기보다,
시간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위에서
다음 질문이 등장합니다.
이 돈은
어떤 방식으로 쓰일 수 있어야 하는가.
자유를 보장하되,
완전히 방치하지는 않는 방식.
그 질문 위에서
다음 설계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