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시즌2]5부. 증세와 소비의 재설계(12장)

12장. 왜 증세는 필수였는가

by 밀리폭

한국형 기본소득이 현실이 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돈은 어디에서 오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 돈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기본소득은
아이디어로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실행되지 못했던 이유는
언제나 같았습니다.

지속 가능한 재원이 없다는 이유,
그리고 그 재원을 둘러싼
끝없는 불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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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낮은 조세부담률

한국은 복지가 적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세금에 대한 신뢰가 낮은 나라였습니다.

국내총생산 대비 조세부담률은
오랫동안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02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한국은 여전히
주요 선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과세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숫자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세금은 내고 있지만,
그 세금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고,
필요한 순간에
돌아온다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기본소득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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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를 싫어한 게 아니라, 세금을 불신했다”

한국 사회는
복지 자체를 거부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의 재난지원금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그 돈은 실제로 소비를 움직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지를 주었습니다.

문제는
그 지원이 한 번뿐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정기적이지 않았고,
예측할 수 없었으며,
증세 없이 지급되었기 때문에
국가의 부채로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불안해한 것은
지원의 존재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었습니다.

한국형 기본소득은
이 불안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선택은 분명했습니다.

빚이 아니라 세금으로,
일회성이 아니라 정기성으로,
선별이 아니라 구조로.

증세는
이 제도를 떠받치는 조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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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득세가 아니었는가

그러나 증세가 필요하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고 해서
어떤 세금이든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득세는
이미 갈등이 포화된 세원이었습니다.

근로소득자들은
이미 충분히 부담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고,
자영업과 자본소득에 대한 불신은
사회 전반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특히 중산층 근로소득자에게
소득세 증세는
연대를 위한 제안이 아니라
부담의 이전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컸습니다.

기본소득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는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득세는
이 제도의 중심 재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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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세에 대한 오래된 오해

소비세가 논의되자
곧바로 같은 반응이 나왔습니다.

소비세는 역진적이라는 주장,
소득이 낮을수록 더 불리하다는 비판이었습니다.

이 지적은 사실이었습니다.
소비세는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부과됩니다.

그러나 한국형 기본소득은
소비세를
부담의 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소비세는
되돌아오는 구조 안에서 설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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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세는 어떻게 작동했는가

모든 사람은 소비할 때 세금을 냅니다.
그러나 그 세금은
기본소득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소비가 적은 사람도
기본소득은 동일하게 받습니다.
소비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냅니다.

결과적으로
순부담은
자연스럽게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냈는지가 아니라,
누구도 순환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소비세는
벌어서 내는 세금이 아니라,
같은 사회 안에서 살아가며
함께 부담하는 비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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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는 숨겨지지 않았다

한국형 기본소득은
증세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 제도는
세금을 더 걷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명확히 했습니다.

다만 그 증세는
불신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순환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비세는
처벌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기본소득은
시혜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금과 지급이
하나의 구조로 연결되었을 때,
사람들은 처음으로
이 제도를
자신과 무관한 정책이 아니라
자신이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증세는
부담의 선언이 아니라,
신뢰를 다시 구성하는 선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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