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시즌2] 5부 증세와 소비의 재설계(14장)

14장. 4대보험, 고용을 막는 세금 구조

by 밀리폭



— 사람이 아니라, 고용을 기준으로 설계된 보호

4대 보험은
오랫동안 복지사회의 핵심 장치였습니다.

질병, 실업, 노령, 산업재해.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가 처음으로 집단적 보호를 제도화한
중요한 성취였습니다.

이 제도는
한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작동했습니다.

사람은
한 직장에 오래 머물며,
안정적인 고용 관계 안에서
보호를 축적해 간다는 전제였습니다.

그래서 4대 보험은
개인의 권리로 설계되었지만,
운영 방식은 고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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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 보험료가 만드는 고정비

문제는
이 구조가 고용주에게는
다른 의미로 작동했다는 점입니다.

고용주는
급여 외에도
4대 보험이라는 또 하나의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했습니다.

이 비용은
채용 인원 수에 비례해 늘어났고,
고정비로 작동했습니다.

사람을 한 명 더 뽑는 일은
업무를 나누는 선택이 아니라,
비용 구조를 바꾸는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고용은 점점 신중해졌고,
사람을 덜 뽑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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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노동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

이 구조는
노동의 유연성을 가로막았습니다.

주 4일 근무,
단시간 고용,
유연한 교대제 같은 실험은
제도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도
보험 부담은 크게 줄지 않았고,
기업은 같은 비용으로
더 적은 선택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노동은 유연해지지 못했고,
사람들은
하나의 일자리에 더 오래 매달리거나,
아예 고용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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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비용, 설명되지 않는 불만

이 비용은
월급 명세서에도,
상품 가격에도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를 내고 있는지는 모르면서도,
불만만 쌓여 가는 이유를
말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내고 있는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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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버린 노동, 따라오지 못한 보호

시간이 흐르며
노동의 형태는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프로젝트 단위 계약,
짧은 고용과 긴 공백이 반복되는 일상.

사람들은 더 이상
한 제도 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보험은 고용에 묶여 있는 동안에만
유효해졌습니다.

그 결과 보호는
사람을 따라다니지 못했고,
일자리를 옮길수록
권리는 끊어졌습니다.

이 시점에서 문제는
보험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고용을 전제로 한 보호 구조가
현실의 노동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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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변화된 신사회적 위험

더 중요한 변화도 있었습니다.

사회가 마주한 위험은
더 이상
실업·질병·노령이라는
전통적 4대 보험의 범주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불안정한 고용,
소득의 단절,
돌봄 공백,
플랫폼 노동,
고립과 소진,

인구감소,

고령화...


이른바 신사회적 위험은
이미 다변화되어 있었고,
기존 보험의 논리로는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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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 등장한 이유

한국형 기본소득은
이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보호를
끝까지 붙잡는 대신,
고용과 분리된
기본적인 기반을 먼저 놓자는 선택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든,
어디에 속해 있든,
잠시 일하지 않더라도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그래서 기본소득은
4대 보험을 부정하기 위해 등장한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제도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된 영역을
이어받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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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는 것이 아니라, 재배치하는 선택

이 선택은
복지를 줄이기 위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변해버린 노동 위에서
보호를 다시 작동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재배치였습니다.

4대 보험은
역할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질 수는 없게 되었고,
기본소득이라는 바닥 위에서
다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기준으로 한 보호와
고용을 기준으로 한 보호가
각자의 위치를 찾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배치는
보호를 고용에서 분리했을 때,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
그 기반을 유지할 것인가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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