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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민아 Nov 01. 2019

한 짝 장갑의 인연

며칠 전,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려는데 장갑 한 짝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모두들 무심히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주인을 찾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주우려 했으나 장갑은 사람들의 신발에 밟히고 있었다. 한쪽 장갑은 어차피 쓸모없는 물건이라 폐기될 운명이라고 아까워하면서 지나쳤다. 인연을 맺었던 어느 주인의 손을 따스하게 감싸주며 다정한 정을 나누었을 텐데...  지금쯤 각각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장갑은 서로를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고 있겠지. 엊그제 잃은 내 왼쪽 빨간 가죽 장갑 한 짝의 행방이 감감하던 터에 나뒹굴어 다니는 한 짝에 대한 연민이 새롭게 마음에 얹힌다.     


장갑에 얽힌 추억이 슬며시 거들며 올라온다.     


지금은 기억력이 쇠해져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빈도가 심하고 생각의 기능도 약해져서 실수도 잦지만, 팔팔하고 청청하던 나이 때에도 건망증은 있었나 보다. 내가 이십 대 후반이던 어느 해 겨울 몇 번에 걸쳐 장갑 한쪽을 잃어버렸다. 만혼이던 나는 결혼을 재촉하는 어른들의 성화에 맞선을 자주 보고 있던 때였다. 평생 배필감을 찾아 나서며 인연이 될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의례적으로 약속 장소로 나가곤 했었다. 추운 겨울이니 장갑은 필수였다. 어색한 만남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보면 으레 장갑 한 짝이 온데간데없었다. 주머니 속에도, 핸드백 안에도, 어디에도 그 한 짝은 보이지 않았다. 그 같은 수난을 몇 번 겪고 난 뒤로는 점점 장갑을 끼고 나가는 게 두려웠다. 그 불쾌함은 미래를 예감하는 예민한 감각마저 불러오기까지 했다. 


 당시 집에서는 내 결혼을 재촉하며 좋은 배필감 한 분을 만나보라고 성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억지 춘향으로 웃어른들께서 정해주신 약속 장소에 떠밀려 가게 되었다. 착잡한 심경으로 만남의 장소로 향하면서,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스스로에게 한 가지 단안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한 쌍의 장갑 두 짝은 바로 선을 볼 사람과의 연을 이어주는 천생연분의 물증이라고. 만약 장갑 한 짝을 잃으면 오늘 만나는 사람과 인연을 맺지 못할 것이고, 반대로 두 짝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인생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만남의 장소에 거의 다다랐을 때, 외투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장갑을 꺼내렸는데 한 짝만 잡히는 것이었다. 아차, 섬 뜻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결국 오늘 만나는 분과도 인연이 없다는 걸까. 오늘의 맞선은 어차피 틀렸구나 풀이 죽어 의기소침해하면서 가던 길을 멈추어 섰다. 하지만 나 자신이 만들어낸 징크스에 마냥 굴복하고 싶지만은 않았다. 순간 오기가 발동하여 없어진 장갑 한 짝을 찾아야겠다는 일념에 얼른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길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로 들어서면서 길바닥부터 샅샅이 뒤지며 갓길 모퉁이를 유심히 살폈다.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걸어가던 중, 얼마쯤 갔을까, 길 가변에 까만 물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내 장갑일까 희망을 걸며 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분명 내 갈색 장갑 한 짝이 거기에 떨어져 있었다. 횡재인 양 얼른 주워서 짝을 채워 양손에 장갑을 끼고는 희소의 미소를 지으며 만남의 장소로 기분 좋게 이동했다. 오늘 만날 사람과의 인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 한 짝의 해프닝은 필연의 좋은 결론으로 결말을 지어주며 인생을 함께할 천생연분을 찾게 해 주었다.    

  

그날 그 시간에 주어 든 장갑 한 짝이 평생 동반자로 인연을 맺게 했노라고 지금도 회상한다. 토양에 뿌려진 씨앗이 자연스레 싹을 틔우듯, 인연이란 그렇게 사소한 만남이 운명의 끈으로 이어져 삶의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연히 찾아온 순간들이 인생의 기념비적인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주어 필연이라는 배역을 담당한다고 믿게 된다.      

 

 몇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장갑 한 짝을 잃는 선수가 되어 오늘 또 한 짝의 장갑을 잃었다. 이제 소지품 잃어버리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별다른 반응 없이 자신을 질책하지도 않고 마음을 구속하지도 않는다. 내 옷장 서랍 속에는 한 짝만으로 된 물건들이 즐비하게 들어 있다. 겨울 장갑 한 짝, 봄가을 장갑 한 짝, 망사 여름 장갑 한 짝, 양말 한 짝, 덧신 한 짝. 버리지도 않고 모아 놓은 외짝들이 짝 잃은 기러기의 한(恨)처럼 서러워하고 있다. 억지로 정을 갈라놓은 불찰이 죄의식으로 길게 남아 있어 그들을 보호하고 싶어서일까? 행방이 묘연한 다른 한 짝이 어디선가 그리워하고 있을 것 같아 그 외로움을 달래주려 서로의 영적인 교감을 만들어 주려 함일까? 짧지만 어느 분과 인연 되어 한 생살 이를 함께해온 인조 피붙이들을 떼어놓아 이별의 아픔을 달래주고 싶어서일까? 주인이 저지른 실수를 사죄하며 마음으로 마냥 그들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삶이란 잃어버리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의 연속성으로 현재를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이 지닌 것을 소중하게 여길 때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생기고 상실의 슬픔도 떠난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 어느 때 또 잃어버릴지 모르는 실수를 반복하겠지만 잃고 난 상실 후에 자각을 통해서 교훈을 배우기도 한다.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나의 일상부터 새롭게 재편성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인도의 간디는 어느 날 막 출발하려는 기차를 바삐 타다가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 순간 얼른 다른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던졌다. 행여 그 신발을 주워 신게 될 가난한 자를 위해 선행을 베푼 것이다. 그분의 이와 같은 세심한 마음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전하는 인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새삼 두 짝의 깊은 의미를 새삼 새겨본다. 나머지 한 짝이 짝을 만나서 한 쌍을 이뤘을 때 누군가에게 머물러 소용이 된다면 그 기쁨은 보람으로 남으리라.  


  엊그제 잃어버린 내 빨간 장갑도 우렁각시가 한 짝을 찾아와 짝을 채워 준다면 내 남은 생은 환하게 웃음꽃이 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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