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든 육지와 바다가 나란히 뻗어있다. 해안의 폭이 조금만 넓거나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으면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되어 여름 한 철 바캉스 손님을 유치하는 명소가 된다. 충청남도 서해안의 작은 포구인 연포도 그렇게 탄생한 해수욕장 중의 하나이다.
80년대 초, 당시까지도 조용한 어촌이었던 이곳을 동양방송과 중앙일보가 개발하면서 매체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벌였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만리포나 대천 해수욕장을 의식해서인지 여러 가지 새로운 이벤트를 벌이며 널리 선전을 했다. ‘연포 페스티벌’이라는 큰 행사를 개최해서 해수욕객의 관심을 한껏 부추겼고, ‘미스 연포 선발대회’를 열어 피서객들의 가슴을 설레게도 했다. 그즈음에 일었던 레저붐에 따라 곳곳에 다양하고 편리한 위락시설을 만들어 이곳을 찾는 가족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 해 우리 가족은 사람들이 복잡하게 붐비는 바닷가보다는 이제 막 개장되어 신선한 연포 해수욕장으로 피서지를 정했다. 당시 연포는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해안과 숲이 아름답게 펼쳐진 시골 바닷가 동네였다. 모래사장을 따라 빽빽이 줄 서 있는 소나무밭은 마치 고향집 앞산 풍경을 보는 듯했다. 특히 소나무 사이사이를 활용하여 만든 ‘솔밭 미니골프장’은 꼬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였다.
우리 가족이 머무를 숙소도 방 몇 개뿐의 조촐한 단층집이었다. 가슴을 트이게 하는 넓은 해안도, 하늘과 맞닿은 먼 수평선도 보이지 않아 뭔가 부족한 듯한 것이 이곳의 첫인상이었다. 모래사장 양 어귀에는 소나무와 바위들이 해안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고, 모형을 띄워 놓은 듯한 동그란 섬이 애교스럽게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매일 아침 섬광을 발하며 솟아오르는 일출의 장관도 그 작은 섬 뒤에서 펼쳐진다고 했다. 이 아담하고 소박한 바닷가 연포에 정을 들인 지 벌써 사십여 년, 지금도 생각날 때면 이곳을 찾고 있다.
어느 해이던가, 일본에서 올라온 동생네 가족과 함께 이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왔었다. 애써 선택한 날이었는데 온종일 폭풍우가 몰아쳐 하늘과 바다가 모두 회색빛이 되어 분간할 수 없었다. 꼼짝없이 숙소에 갇힌 신세가 된 우리는 언제쯤 밖으로 나가게 될지 초조하기만 했다. 쉴 새 없이 퍼붓는 폭우로 인해 숙소는 물 위에 떠 있는 섬이 되었다. 모두가 고립된 채 불안에 떨고 있을 때도 철 모르는 아이들은 빗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마당을 휘젓고 다녔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고무보트 몇 개를 가지고 오셨다. 비는 곧 그칠 테니 보트를 타며 놀고 있으라 하시며 위로해 주셨다. 그분의 고마운 배려 덕분에 아이들은 빗속에서도 신나는 보트놀이를 할 수 있었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잠시라도 무서운 폭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주팔’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분은 연포 리조트 연수원에 근무하던 직원으로 평소에도 많은 업무로 바쁜 분이었다. 인파가 붐비는 해수욕장이라 자주 사고가 발생하는데, 이때마다 해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이주팔 씨, 이주팔 씨는 지금 곧 관리실로 와 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마 그 시기에 연포 해수욕장을 찾았던 분이라면 나처럼 그분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연포의 토박이 주민이기도 한 이주팔 씨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연포 해수욕장 지킴이로서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계셨다. 우리와도 친분을 갖게 되어 지금까지도 돈독한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던가, 젊은 청년이었던 그분도 이제는 정년을 맞아 퇴직하셨다고 한다.
요즘에는 새해 첫날이 되면 각 지역에서 연포의 일출을 보려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해맞이 행사를 크게 하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래사장에 천막을 치고 물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며 추위에 떠는 손님들에게 뜨끈한 떡국을 제공한다. 연포마을은 그동안 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건축물 조성이 제한되고 있었는데 몇 해 전 규제가 해제되었다고 한다. 그 기회를 놓칠세라 다른 해수욕장에 버금가는 현대식 호텔과 펜션이 우후죽순 들어서서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느꼈던 그 순박한 마을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오래전,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 다시 이곳을 찾았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도 사람들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적막하고 쓸쓸한 겨울 바닷가 모습이려니 했는데 실은 그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인접한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의 여파가 이곳에까지 미쳤던 것이었다. 연포는 해안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지형에 밀물과 썰물이 조용히 들고 나서 마치 담수호와 같은 포구이다. 여름에는 남서풍을 타고 오는 파도가 큰 바다에 떠다니던 잡다한 부초를 싣고 와 모래사장에 슬며시 밀어 넣고 가버려서 해변을 거니는 피서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유조선 사고가 발생한 그해 겨울에는 하늬바람(북서풍)의 덕택으로 기름띠가 이곳까지 몰려오지 않았다. 만약 사고가 여름에 일어났더라면 그 검은 기름 물결은 이 조촐하고 아담한 포구를 흉악한 얼룩으로 칠해 놓았으리라. 운 좋게 위기를 모면한 연포는 바닷물에도, 바윗돌에도, 모래사장에도 기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뚝 끊기고 말았다. 고기잡이 어선들은 포구 안쪽에 몰려 추위에 떠는 듯 힘없이 정박하고 있었다. 기름띠의 두려움과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까지 겹쳐서인지, 그나마 오려고 했던 겨울 관광객은 줄줄이 예약을 취소했고 해맞이 축제와 모래사장의 떡국 잔치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올 때마다 쉬고 가는 숙소 ‘연포 리조트 연수원’은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한 이 층 건물이다. 아래 위층 합해도 몇 칸 되지 않는 방이지만 겨울에는 온돌의 따듯한 훈기가 우리를 편안히 휴식하게 해주어 자주 이용하고 있다. 협소하고 별다른 시설이 없는 방이지만 바다를 향해 커다란 창문이 나 있어 커튼만 열면 바다와 하늘이 한눈에 꽉 찬다. 만조를 만나는 운 좋은 날은 하얀 거품을 몰고 오는 기다란 파도가 출렁이며 모래사장 끝까지와 지나간 세월의 그림자를 싣고 내 눈앞에 꿈결처럼 머문다. 파도가 그려내는 물결무늬 그림자를 밟으며 뛰어다니던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려온다. 한참 모랫 구멍을 파내기에 열중하다가 놀란 새끼 게들이 소스라쳐 도망가는 모습을 보며 깔깔대던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도 보인다.
그해 겨울, 아무도 찾아주지 않은 외로운 연포 바다 저편에 잔잔하게 바람이 거닐었다. 검은 띠가 무서워 어디론가 숨어버린 갈매기도, 역한 기름 냄새가 두려워 발걸음을 끊어버린 사람들도 모두 이 정겨운 포구를 사랑했건만.
그날따라 겨울 바다 연포는 몹시 추워 보였다.